[분석과 시각] 공급자보다 수요자 위주 정책 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등 주요 무역적자 대상국의 대미 수출품에 대해 관세율을 대폭 올리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철강, 기계 등 전통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지지층 결집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통상정책은 미국 내에서도 의회와 언론, 업계 등을 중심으로 많은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수입제품의 가격이 올라 미국민들의 지갑을 얇게 만드는 데다 수입원자재와 부품을 사용하는 미국 기업들의 비용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2017년 미국의 수입관세율은 평균 3.5%로 그 어떤 나라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자동차 관세율은 2.5%로 유럽연합의 4분의 1, 중국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미국의 수입관세율이 낮은 이유는 전통적으로 미국이 소비자의 권익과 후생을 중시해왔기 때문이다. 다른 많은 나라처럼 관세장벽을 높여 자국의 생산자를 보호하기보다는 낮은 관세로 수입품 가격을 싸게 해서 소비자를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세계경제의 규칙제정자로서 자유무역을 통해 세계경제의 성장을 촉진한다는 명분도 살리는 길이었다. 물론 20세기 후반 일본과 독일, 한국 등 여러 나라에 밀리기 전까지 미국의 제조업이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던 점도 중요한 배경이 됐을 것이다.

트럼프의 무역정책은 한마디로 수요자 위주에서 공급자 위주로의 정책 전환을 의미한다. 어떤 나라든 정책결정 과정에서 소비자의 이익을 중시할 것인지 아니면 공급자 지위를 보호할 것인지의 문제는 광범위한 영역에 걸친 중요한 이슈다. 영세상인과 중소기업 등 경제적 약자 보호를 위한 정책이나 국제경쟁력이 취약한 특정 상품 혹은 서비스산업을 보호하는 것은 공급자 위주 정책의 예다. 이때 보호받는 공급자는 소수인 반면에 보호로 인해 손해를 보는 수요자는 국민 전체인 경우가 많다. 공급자의 집중된 이익보다 수요 측면의 분산된 이익이 전체 합으로는 클 가능성이 높지만 흔히 공급자 위주의 정책이 채택된다. 정치 과정에서 경제적 약자 혹은 유치산업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공급자들이 조직적이고 효과적으로 의사표시를 하는 것과 관련 있다.

도는 게 역사다. 미국의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으면서 탈(脫)세계화와 보호무역을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한 것은 필연일지도 모른다. 향후 우리에게 더욱 큰 위협 요인은 중국의 제조업 굴기다. 중국이 지금은 지식재산권 침해와 국유기업에 대한 막대한 보조금 등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 지탄받으며 수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전방위적으로 산업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는 중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때는 오히려 중국이 수요자 위주의 정책으로 전환하면서 개방압력의 선두에 설 가능성이 높다. 정치군사 및 서비스산업 대국 미국과 제조업 대국 중국의 입장이 맞물려 세계적으로 상품과 서비스의 수입장벽이 현재보다 낮아지는 흐름을 탈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한국이 공급자 위주의 정책으로 특정 산업 혹은 사업자 집단을 지속적으로 보호하기는 쉽지 않다. 대내외 개방과 경쟁을 기반으로 한 혁신을 통해 현재의 부분적인 우위를 지켜나가는 동시에 새로운 우위를 창출하는 길밖에는 선택이 없다. 그것이 최강 선진국 및 중국 기업의 발굽에 짓밟히지 않는 길이다. 한국의 주력 제조업 영역은 중국 육성산업의 부분집합이며 서비스산업 경쟁력은 선진국에 한참 뒤처져 있다. 공급자 위주의 정책은 종종 ‘사중적 손실(deadweight loss)’을 낳으므로 수요자 위주의 정책을 우선시해 산업전반의 효율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전체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수의 분산된 수요자 이익을 표출시키고 이를 정책결정 과정에 반영할 수 있는 메커니즘 디자인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