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예술가의 집을 찾아서
어릴 적 살던,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돼 버린 종로구 내수동 181번지가 못내 그리워 찾아 헤맨 것은 1980년대 말 처음 뉴욕으로 떠나 몇 년을 지내고 돌아온 뒤였다. 막다른 골목 대문집인 우리 집이 있던 골목길 입구에 공중목욕탕이 있었고, 나는 어머니를 따라 그 목욕탕에 가서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걸 너무 싫어했다. 어머니는 눈을 감고 물속에서 백을 세지 않으면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간다는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셨지만, 유난히 순진했던 나는 목욕탕 창문에 어리는 망태 할아버지의 그림자를 보는 상상을 하곤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낙원동의 오래된 일본식 주택에 살았다. 그 집 긴 담벼락을 지나면 유명했던 ‘오진암’이 있었다. 우리 집은 헐려 오피스텔이 됐고, 오진암도 헐려 터만 남았다. 낙원동에 갈 때마다 나는 사라져버린 내 삶의 한 부분인 옛집 터를 바라보며 탄식했다. 그곳에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지금도 있는 은성약국 골목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목욕탕이 있는 익선동으로 이어진다.

요즘 가끔 익선동을 갈 때마다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다. 마치 상하이 뒷골목을 거니는 기분으로 익선동 골목길 구석구석을 거닌다. 한옥을 개조한 카페와 각 나라 음식점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익선동 골목은 관광 차원에서 그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 인간의 운명이 대기만성이 좋은 것처럼 공간도 늦게 진화할수록 세련된 시공으로 다시 태어난다.

새로 태어난 익선동은 일종의 골목 박물관이다. 박물관이란 인류의 흔적을 없애지 않고 후세에 남기고 보존하려는 공간이다. 우리나라의 미술관 중 내가 좋아하는 곳은 양구에 있는 박수근미술관이다. 미술관 뒤편에는 자작나무 숲으로 가는 산책로가 있고, 그 길을 따라 걸으면 전망대와 박수근 화백 묘소가 있다. 묘소 동산에 앉아 계신 청동으로 빚은 박수근 화백을 만나러 가는 길은 참 평화롭다.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그림에 대한 작가의 소박한 진술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화가가 나고 자란 박수근 생가 터는 미술관으로 살아남았다. 세상 곳곳을 구경하면서 예술가의 집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걸 보면 늘 부러웠다. 그 어떤 예술가도 자신의 흔적이 영원하리라는 꿈을 지니며 살아갈 것이다.

터키 이스탄불에 가면 소설가 오르한 파묵이 어릴 적 살던 집을 사서 개조해 꾸민 ‘순수박물관’이 있다. 44일 동안 사랑을 나눈 한 여자를 평생 동안 사랑하면서 그녀와 관련된 추억이 담긴 수많은 물건을 모으고, 종국에는 그 물건들을 전시한 박물관을 만드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 《순수박물관》은 소설 속 여주인공의 집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진짜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순수박물관이 있는 골목길에 오래된 목욕탕이 있었다. 그 목욕탕에 들어가 목욕을 하면서 어릴 적 어머니와 갔던 목욕탕을 떠올렸다. 뜨거운 탕에서 백을 세어야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가지 않는다는 그 옛날 들려준 어머니의 소설 같은 거짓말도 같이 떠올랐다.

내가 살았던 모든 집이 이제는 실재하지 않고, 그저 아파트 속에서만 현존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북한산 자락에 마련해준 내 오래된 작업실도 머지않아 고양시에 수용돼 ‘길’로 변할 것이고, 남는 것은 작업실 터의 추억뿐이리라. 문득 내가 죽은 뒤에도 아주 오래 남는 화가가 되는 상상을 해본다. 그렇다면 사라진 나의 옛집들의 기억은 참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이른 회한이 밀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