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 제조 및 렌털업체 동양매직(현 SK매직) 매각 본입찰을 하루 앞둔 2014년 4월29일 저녁. 이상호 글랜우드PE 대표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글랜우드-NH PE 컨소시엄은 몇 시간 전 회의에서 동양매직 지분가치로 2500억~2600억원을 써내자고 결론을 내렸다. 순차입금을 포함한 총기업가치(EV) 기준으로는 3200억~3300억원. 2013년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의 6배 수준이었다. 미국계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 뱅커 출신인 이 대표는 아무래도 지분가치가 3000억원을 넘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BITDA 대비 6배는 당시 가전 제조업체들의 거래 배수(멀티플)였다. 렌털업체인 코웨이는 12배에 거래됐다. 이 대표는 동양매직도 렌털업체로 분류해 가치를 매겨야 한다고 봤다. 그래야 한앤컴퍼니, 현대홈쇼핑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인수 후 확실한 렌털업체로 탈바꿈시키면 투자회수 시 높은 배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작용했다. 컨소시엄 파트너들에게 다시 의견을 전했고 “뜻대로 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컨소시엄은 결국 3010억원을 적어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가전 제조 중심이던 동양매직을 렌털업체로 혁신시켜 2년 만에 38%의 내부수익률(IRR)을 기록한 동양매직 투자 ‘마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글랜우드의 '매직'… 동양매직 렌털업체로 변신시켜 몸값 두 배로
렌털업 집중 투자 위해 차입도 포기

실사를 거쳐 확정된 동양매직 최종 인수가는 2850억원. 글랜우드 컨소시엄은 이보다 많은 총 3500억원(중순위 포함)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다. 은행 돈은 한 푼도 빌리지 않았다. 사모펀드들이 투자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인수 대금의 상당 부분을 차입을 통해 충당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인수 구조였다.

이는 동양매직을 렌털업체로 빠르게 탈바꿈시킨다는 구조 혁신 전략의 일환이었다. 렌털업은 특성상 초기에 자본 투자가 많이 들어간다. 100만원 정도 하는 정수기를 일단 고객들에게 지급하고 매출은 이듬해부터 발생하기 때문이다. 정종우 글랜우드PE 전무는 “차입을 하면 이자를 갚기 위해 계속 배당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투자 여력이 줄어든다”며 “초기에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렌털 계정을 100만 개까지 빠르게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말했다.

글랜우드 컨소시엄은 인수 직후 38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도 했다. (주)동양 우발채무에 대한 지급보증 등 동양그룹 시절 떠안은 악성 부채를 떨어내기 위해서였다. 2013년 말 10%를 넘었던 금융비용(가중평균 차입 이자율)을 2014년 말 7.5%, 2015년 말 3.6%까지 떨어뜨렸다. 그만큼 투자 여력도 늘어났다.

조직 전열 가다듬고 ‘공격 앞으로’

동양매직의 기존 조직은 가전과 렌털 사업이 혼재된 형태였다. 컨소시엄은 조직을 가전사업부와 렌털사업부로 분리하고 각 사업 부문장이 개발, 생산, 영업, 마케팅을 모두 관장하는 체제로 바꿨다. 최고경영자(CEO)는 내부 출신인 강경수 렌털담당 이사를 전무로 승진 발탁했다. 조직의 안정을 꾀하고 렌털 사업에 힘을 싣겠다는 뜻이었다.

인력 구조조정은 없었다. 오히려 방문판매 및 애프터서비스를 담당하는 매직케어(MC) 인력을 인수 당시 554명에서 2015년 2100명까지 늘렸다. 정 전무는 “과거 판매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던 홈쇼핑 채널은 매출을 빠르게 늘리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해약률과 연체율이 높다는 단점이 있었다”며 “방문 판매 인력을 확충해 렌털 계정을 빠르게 늘리는 동시에 계정의 건전성도 높였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2014년 인수 당시 50만 개 수준이던 렌털 계정이 2015년 73만4000개로 늘었다. 2016년 매각 시점에는 100만 개에 육박했다. 2013년 0.95%였던 해약률은 2015년 0.68%로 낮아졌고, 같은 기간 수금률은 89.2%에서 92.20%로 높아졌다.

선택과 집중의 제품 개발 전략

제품도 혁신 대상이었다. 인수 당시 동양매직은 제품 종류가 너무 많았다. 새 경영진은 수익성이 낮은 제품은 과감히 정리하는 동시에 신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배우 현빈이 광고에 출연해 ‘현빈 정수기’라 불린 직수형 슈퍼 정수기가 대표적이었다. 세균 번식 우려가 있는 저수조를 뺀 직수형 정수기는 소위 ‘대박’을 쳤다.

사물인터넷(IoT) 등 신기술을 적극 활용한 것도 동양매직이 시장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미세먼지가 늘면서 공기청정기 시장이 커지자 동양매직은 센서로 실내 공기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슈퍼 청정기’를 내놨다. IoT 기능을 적용해 집 밖에서 휴대폰으로도 조작할 수 있도록 했다. 소비자 반응은 역시 폭발적이었다.

글랜우드 컨소시엄은 렌털 계정이 100만 개에 도달한 2016년 8월 매각작업을 시작했다. 제조업체가 아니라 렌털업체로 평가받을 수 있는 규모의 경제가 갖춰졌다는 판단에서다. SK, 현대백화점, 유니드, AJ네트웍스 등 대기업은 물론 IMM PE, 스틱인베스트먼트, 칼라일그룹 등 쟁쟁한 PEF 운용사들이 대거 도전장을 내밀었다. 치열한 인수전 끝에 동양매직은 6100억원의 인수가를 적어낸 SK네트웍스 품에 돌아갔다. EV 기준으로는 약 7100억원. 2016년 EBITDA의 10배였다.

유창재/이동훈 기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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