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오는 돈보다 더 쓰면 모아놓은 자금이 바닥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정부가 일자리 대책 등 돈 드는 사업마다 곶감 빼 먹듯 하는 고용보험이 그런 처지다. 올해 예산안 심사 때 제기된 고용보험 고갈 우려가 그동안 덜 부각된 것은 국민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금 적자→고갈→보험료 인상’이 가시화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1995년 도입된 고용보험은 노사로부터 갹출한 기금으로 실업급여 지급과 고용안정·직업능력개발, 육아휴직 지원 등의 사업을 펴는 사회보험이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수시로 고용보험을 동원해 기금의 고용안정 계정은 이미 지난해 적자를 냈고, 실업급여 계정도 올 1, 2월 지급액이 역대 최대로 불어나며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 4년간 보험료 수입이 21% 늘 때 지출은 해마다 1조원씩 늘어 35%나 증가했다.

진짜 문제는 앞으로 지출 증가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란 점이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으로 당장 구직급여, 육아휴직, 출산휴가 등의 지원금이 자동으로 올라갔다. 게다가 청년 일자리 대책, 육아휴직급여 확대, 근로시간 단축 후속대책, 고용위기지역 지원금 등이 죄다 고용보험의 부담이다. 하반기엔 실업급여 지급기간이 30일 연장되고, 지급수준도 평균임금의 60%(종전 50%)로 높아진다. 이렇게 펑펑 쓰는데 고갈이 안 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고용노동부 추계로도 고용보험은 2020년 적자(-2073억원)로 돌아서 2025년엔 적자폭이 2조6395억원에 이를 전망이지만, 지금 추세면 훨씬 더 큰 구멍이 날 게 뻔하다. 작년 말 10조1368억원이었던 기금 적립액이 바닥나는 것도 시간문제다. 이 때문에 정부 일각에선 기업과 근로자가 반반씩 내는 실업급여 요율(1.3%)과 기업이 부담하는 고용안정 요율(0.25~0.85%) 인상론을 공공연히 제기한다. 생색은 정부가 내고, 부담은 노사에 전가하는 꼴이다.

물론 고용안정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국회심의를 거쳐야 하는 예산 대신 손쉬운 고용보험을 과도하게 손대는 것은 정부의 모럴해저드다. 구조개혁, 노동개혁 등 일자리 근본 처방을 외면한 채 당장 돈으로 때우는 ‘땜질 대책’으로 고용보험마저 거덜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