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청년실업 대란, 보수야당 책임이 크다
작년에 이어 올 들어서도 ‘목표 대비 초과 세수(稅收) 행진’이 이어지고 있는 데는 “전임 정부의 공(功)이 크다”는 말이 나돈다. 박근혜 정부가 취임 초 ‘경제민주화’를 밀어붙이면서 기업들에 대한 각종 세금감면조항을 없앤 덕분이라는 것이다. 법인세 명목세율은 놔뒀지만 실질세율을 크게 끌어올렸다. 그 결과가 작년 목표 대비 14조원, 올 1월엔 2조7000억원을 더 걷히게 하는 ‘마법’으로 작동했다. 명목세율을 건드리지 않음으로써, 후임 정부로 하여금 법인세 세율 인상을 단행할 수 있는 여지까지 남겨 줬다.

‘정통 보수’를 자임했던 새누리당(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일부의 전신)이 ‘좌(左)클릭 정책’으로 시장경제의 발목을 잡아챈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전 계층을 대상으로 ‘영·유아 무상보육’에 매년 9조원씩을 살포했지만, 범국민적인 ‘공짜심리’만 키워놓았을 뿐 출산율은 되레 낮아졌다.

선거 때마다 표를 의식해 ‘좌파에 꿀릴 것 없는’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냈지만, 유권자들로부터 ‘식이난타(食而亂打: 정책의 과실만 따먹고 두들겨 패기)’ 당하기 일쑤였다. 2년 전의 20대 국회 총선거를 앞두고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구조조정이 시급했던 조선 자동차 등의 사업장을 돌아다니며 “노조원들 일자리를 반드시 지켜주겠다”면서 고용시장 유연성 확대를 향한 노동개혁에 찬물을 끼얹었다. 시간당 6000원대였던 최저임금을 “20대 국회 임기 내에 9000원으로 올리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보수정당’이 이렇게 좌파 영역을 치고 들어오니 좌파 정당들은 ‘더 세게’ 왼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민주당이 20대 총선 공약으로 ‘최저임금 1만원’을 내놓은 데는 그런 사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좌·우파 정당이 각각의 이념과 강령에 충실하게 정책을 내놓아야 건강한 경쟁이 가능했다. 그래야 유권자들도 제대로 된 비교 선택을 할 수 있을 텐데, 좌파 정책 따르기에 급급했던 ‘무늬만 우파’ 정당이 정치판을 잡탕으로 만들어버렸다. ‘공짜’와 ‘퍼주기’에 맛 들인 유권자들은 ‘더 화끈한 쪽’을 선택했다.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정체성을 잃은 보수정당의 ‘유랑’으로 인해 이 나라는 점점 더 좌파 정치세력의 ‘독무대’로 바뀌어가고 있다. 청와대는 ‘사회적 경제’ ‘동일가치 노동, 동일 임금’과 ‘노사대등 결정 원칙’ ‘토지공개념’ 등 좌파진영 아젠다를 아예 헌법에 못 박겠다고까지 나왔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과 획일적인 근로시간 단축의 부작용이 잇따르고 있지만, 소상공인 적합업종제도 법제화 등 더 노골적인 시장개입·설계주의 정책을 예고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엊그제 청와대 회의에서 “국정 중심을 경제·효율을 넘어 안전·인권·약자로 전환할 것”이라며 평등주의가 통치 지향점임을 재확인했다.

이런 정부·여당의 행보를 대의민주주의제도 관점에서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각 정당이 추구하는 이념과 정책방향을 공표하고, 유권자를 설득해 국정에 반영해 나가는 게 정당정치제도다. 비난받아야 할 곳은 설계주의 정치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 확대와 청년실업 대란 등 적폐를 치유해 낼 대안(代案)으로서의 믿음을 유권자들에게 주지 못하고 있는 보수야당이다. 경제적 자유주의와 사유재산권 보호, 사적 자치 존중 등 ‘우파’를 자임하는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그에 충실한 정책으로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모습을 지금이라도 보여야 한다.

영국 보수당은 노동당의 좌파정치가 인기몰이를 하던 2000년대 초반, 16가지에 걸친 ‘보수주의 신념’을 발표하며 정체성에 더욱 충실할 것을 다짐했다. “국민은 자신의 삶의 주인이고, 기회는 균등하되, 책임 없는 자유는 있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자기책임 원칙’을 분명히 했다. 개인의 삶을 국가책임, 사회책임으로 모는 좌파가치와 분명하게 선을 긋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기다렸다. 이 나라의 보수정당이 “우리도 그렇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을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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