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더 드세질 중국을 다루는 법
지난해 10월31일 저녁, 주한 중국대사관이 국내 언론사 논설·해설위원 30여 명을 초청했다. 추궈훙 대사가 시진핑 2기 체제를 설명한 뒤 자연스레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이 ‘뒤끝작렬’이던 때라 궁금증이 쏟아졌다.

후반 무렵, 이례적 광경이 벌어졌다. 추 대사가 많은 언론 중 한 곳을 콕 집어 질문을 받은 것이다. 그는 “중국을 엄정하게 비판해 지목했다”는 취지의 부연설명까지 했다. 이 신문이 한국경제신문이다.

그즈음 한경 사설에선 중국이 말로는 자유무역, 시장경제국가임을 강조하면서 경제보복을 자행하는 이율배반을 비판하고, 21세기 세계 보편가치에 부합하는 나라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논조가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뒤집어 보면 중국이 감정 섞인 비난은 무시해도 논박이 어려운 비판은 그들도 수긍하고 경계한다는 방증이다. 이 대목에서 중국을 다루는 해법을 찾을 수 있다. 감정이 아니라 논리로, 대증적 대응이 아니라 보편가치로 접근할 때 먹힌다는 얘기다.

우리 역사에도 그랬던 적이 있긴 하다. 고려 서희는 싸우지 않고 논리로 이겼다. 하지만 대부분 시기는 ‘닥치고 사대(事大)’였고, 유교 명분주의에 입각한 과공(過恭) 끝에 큰 낭패로 귀결됐다.

한·중 수교(1992) 이후 한동안은 ‘차이가 나서 차이나’라는 우스개가 통했다. 그러나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축구만 빼고 ‘공중증(恐中症)’이 만연해 있다. 그 분수령이 2000년 마늘파동이었다. 한국은 ‘밀면 밀리는 나라’로 된 셈이다.

역대 정부는 예외 없이 대중(對中)외교를 논리보다 감성으로 접근했다. 노무현 정부는 중국이 학수고대하던 시장경제국 지위를 덜컥 승인해줬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진타오 주석과 공식회담만 역대 최다인 11번을 하고 숱하게 밥도 함께 먹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톈안먼 망루에 올랐다. 문재인 정부도 ‘열과 성을 다하면 통한다’는 쪽이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치졸한 사드보복과 ‘대놓고 홀대’였다.

시진핑 2기 체제는 더 노골적으로 ‘중화(中華)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夢)을 내걸었다. 이런 공격적 민족주의는 복거일의 지적처럼 배타적, 폐쇄적, 팽창적으로 치닫는다. ‘덩치만 큰 철부지 어른 국가’(거영국)라는 비판이 나왔어도 내부 성찰이 없다. 되레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거친 나라’가 돼간다.

이런 변화는 예고된 것이다. 중국 사회의 중추는 톈안먼 사태(1989) 이후 철저한 민족주의 교육을 받은 30~40대다. 한 대 맞으면 백 대 때려야 한다는 집단의식을 갖고 있다. 센카쿠 분쟁이나 사드 보복이 더 용렬해지고 격해진 이유다. 근대적 시민의식은 대체로 경제발전에 한참 후행한다.

하지만 중화주의는 중국에도 양날의 칼이다. 공격적 민족주의를 내걸고서 국제사회에서 대국의 위상을 인정받겠다는 것은 모순이다. 몽골 출신 학자 양하이잉은 《반(反)중국역사》에서 “중화사상은 중국이 개방되고 한층 더 발전할 가능성을 묶는 족쇄”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번성했던 것은 당, 원, 청 등 개방과 관용의 시기였고, 중화주의가 흥할 때는 그 반대였다는 것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중국과 맞대고 살아야 한다. 중국이 세질수록 선택지는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국제관계는 ‘포커게임’과 같다. 반드시 내 패가 좋아야만 이기는 게 아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미·북 정상회담 성사과정에서 보인 중국의 반응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빈 대통령을 ‘혼밥’하게 만든 시 주석이 그 바쁜 양회(兩會)기간 중에 한국 특사단을 만났다.

‘4강’ 틈바구니에 낀 한국이지만, 미국이라는 강력한 지렛대가 있음을 새삼 확인했다. 또한 중국이 가장 껄끄러워 하는 ‘일본 카드’도 있다. 중국에는 ‘미·일 카드’를 활용하고 자유, 개방, 평화, 공존 등 국제사회의 보편가치로 다뤄야 한다. 대중관계는 감성적 친중이 아니라 한·미·일 동맹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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