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작은 걸음이라도 한 걸음씩
대북특사단의 방북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합의되고, 미국과 북한 간 정상회담의 장도 마련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남북관계가 급물살을 타면서 다시 한번 한반도 평화와 공존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반(反)나치 운동가이자 서독의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다. 그는 독일 통일의 주춧돌을 놓은 인물로서 우리에게는 폴란드 바르샤바의 저항 투사 추모지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하는 한 장의 사진으로 더욱 익숙하다.

브란트가 독일 통일의 초석을 놓았다고 하는 이유는 그의 동방정책에서 기인한다. 그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는 것보다는 작은 걸음이라도 나아가는 게 낫다”며 통일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한 바 있다. 눈앞의 해결 가능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상호 신뢰를 쌓고, 더 많은 대화와 협상 무대를 마련하는 것이 그가 추구했던 동방정책의 핵심이다.

또한, 그는 체제와 이데올로기의 벽을 넘어 인간 삶의 고통을 경감하는 데 초점을 맞추자고 호소했는데, 이것은 적십자 인도주의 이념과도 맥을 같이한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통일은 정치권의 노력만으로 어렵다는 사실이다. 독일도 정치권의 노력과 함께 민간에서의 움직임이 있었는데, 일례로 서독의 교회들은 ‘세계를 위한 빵’이라는 기구를 통해 동독 주민을 지원했다. 1963년부터 1989년까지 26년 동안 총 15억달러에 해당하는 현금과 필수품을 동독 국민에게 나눠줬고, 또 자유를 찾아 서독에 오고 싶어 하는 동독 망명객 3만3700여 명을 데려오기 위한 자금도 지급했다. 이런 신뢰 관계가 쌓이면서 동독과 서독은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었다.

평화와 공존을 꿈꾸는 우리식의 통일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정치적 수사나 역학관계만으로 통일이 이뤄지지는 않는다고 본다. 먼저 남과 북이 서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또한, 민간 차원의 교류를 활발히 함과 동시에 인도주의 원칙에 근거해서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아무리 정치적 상황이 우호적으로 변한다고 하더라도 서로에 대한 배척과 증오의 감정을 버리지 못한다면 통일은 요원한 일일 것이다.

서로 가까워지려는 노력과 범정부 차원에서의 활발한 교류가 함께할 때, 한반도 평화 공동체 건설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작은 걸음이라도 한 걸음씩, 평화와 공존을 향한 우리의 걸음이 결코 멈추어 서지 않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