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중국식 경제모형' 추구하는 중국 경제학계
“중국의 경험을 풀어놓는 데 그쳐선 안 된다. 경제이론으로 설명하는 혁신이 우리의 사명이다.” 중국 칭화대를 대표하는 경제학자인 리다오쿠이(李稻葵) 교수가 지난해 11월 초 모교 경제관리학원에서 동료·후학들과 함께한 다짐이다. 기존 서구 경제이론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중국 경제의 기적을 새로운 발전모델로 설명할 수 있어야 경제학계의 혁신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사회에 학문적 성과를 내놓을 것을 독려하면서 ‘사명’이란 표현을 쓴 것은 중국 사회만의 특징일 수 있지만 자주적으로 중국의 경제 기적을 설명하려는 문제의식과 책임감은 경외롭게 느껴진다. 더욱이 리 교수는 서방 경제학계의 한복판(미국 하버드대)에서 수학했고, 인민은행 금융통화위원 등 남부러울 것 없는 이력을 지녔다. 한국 대학사회 같으면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아도 이상할 게 없는’ 50대 중반의 연배다.

리 교수의 혁신이 떠오른 것은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의 미국 주관 방송 해설을 맡았다가 신중치 못한 발언으로 한국인의 공분을 산 조슈아 레이모 때문이다. “모든 한국인이 일본이 문화·기술·경제적으로 중요한 본보기였다고 얘기할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동아시아 현 정세에 대한 언론인으로서의 무지를 여지없이 드러냄은 물론 《베이징 컨센서스(Beijing Consensus)》 등 일련의 저작을 통해 구축한 ‘서방 최고의 중국 전문가 중 한 명’이라는 학계 평판에도 큰 흠집을 남겼다.

1989년 제시된 ‘워싱턴 컨센서스’가 서방세계가 추종하는 신자유주의 기반의 발전 방식인 데 비해 2004년 레이모가 주창한 베이징 컨센서스는 시장 기능을 일부 도입하면서도 국유 경제체제와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유지해온 중국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정작 ‘중국 특색’에 유달리 집착해온 중국 공산당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다. 개념 자체에 이론적 허점이 적지 않았던 데다 워싱턴의 대척점에서 베이징이 양립하는 듯한 모양새로 비쳐 서방세계의 경계를 우려한다는 해석이 많았다. 2004년은 중국이 ‘화평굴기’ 외교 노선으로 전환한 지 2년이 된 해였다.

리 교수의 칭화대 강연은 5년마다 물갈이하는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19기 임기를 시작한 지 2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나왔다. 지난해 10월 열린 19기 당대회는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시진핑 사상으로서 당장(黨章)에 삽입하고, 2050년까지의 원대한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비전을 제시했다. 처음으로 서방 경제 강국들을 넘어서는 이정표를 제시한 만큼 그 경제적 가능성도 이론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커졌다. 그러자면 지나온 40년 기적부터 중국 특색의 모형으로 설명해야 중국 경제학계의 얼굴이 선다. 이런 중차대한 임무를 국외자에게, 그것도 서방의 시각으로 창안한 개념에 의지할 계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중국 경제는 지난 40년간 연평균 9.7%씩 성장했다. 근대 경제학 성립 이후 전례가 없는 인류사적 사건이다. 기존 경제이론으로는 이처럼 장기간의 성장을 설명하기 어려운 만큼 개혁개방이나 인구 보너스 같은 중국적 특색을 고려한 모형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스스로의 용어와 이론 틀로 설명하지 못할 경우 중국의 경험은 역사책에 일회성 기적으로만 남게 되고, 서방 발전모델의 ‘중국판 변주(變奏)’에 머물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 경제학계의 이 같은 시도가 성과를 낼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서방경제 이론모형을 탄생시킨 시대적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으면서 중국식 모델링을 추구하는 그 거시적 안목만큼은 한국 경제학계가 부러워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