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세상에 착한 금리는 없다
지난 금요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연임 발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금리결정을 좌우하는 한은 총재의 연임이 ‘사실상 처음’이라는 수식어 뒤에는 그만큼 불안한 자금시장의 흐름이 있다. 이미 상당히 예고된 이달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인한 한·미 금리 역전과 지난해 말로 145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 문제를 엄중하게 봐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결정의 중심에는 금리가 있다.

이 총재는 취임 후 글로벌 금융위기로 침체된 국내 경기를 위해 다섯 차례 금리를 인하했다. 그 결과 지난해 말 가계부채가 1450조원을 넘어섰고 늘어난 유동성이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갔으며 투자 시장 내 자금 쏠림현상이 심해졌다. 미국 등 선진국 통화당국이 10년간의 유동성 잔치를 끝내며 긴축의 길로 들어섰고 한은도 지난해 6년5개월 만에 처음 금리를 인상했다. 하지만 향후 벌어질 후폭풍과 대응 방안에 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다. 금융시장 악화를 우려해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면 장래의 잠재적 위험이 커질 것이고, 금리 인상 속도가 과도하면 또 다른 위험을 불러온다.

올해 초만 해도 세계 경제 회복에 탄력이 붙고 낙관적인 전망이 우세했다. 그런데 지난 2월 초 투자심리에 충격을 줄 만한 특별한 요인이 없고 경제지표들도 양호한 모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요인과 프로그램 매매만으로 주가가 폭락하는 기괴한 현상이 나타났다. 해외 의존도가 심한 국가인 한국으로서는 주요국 통화당국이 공조하며 금리를 점진적으로 올려 나가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미국발(發) 버블 붕괴의 전조로 생각되는 지난달 증시 폭락 및 예상보다 빠른 금리 인상 전망과 함께 글로벌 경기 둔화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지난 글로벌 경기 회복이 저금리에 의존한 바가 크며, 생산성 향상이 아닌 지출 확대를 통해 경기를 진작시켜 왔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달 ‘정부 부채 전망’ 보고서에서 지적한 것처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기조 속에서 회원국 정부 부채 총액이 2008년 25조달러에서 올해 45조달러로 80% 늘어나고 이 중 40%의 만기가 향후 3년 내에 돌아올 전망이다. 금리 인상기에 들어서면 각국은 부채 수준에 따라 늘어나는 기존 부채의 재발행 비용이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 경제도 이런 국제 금융시장 환경의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 수출과 경상수지 등 주요 경제지표가 양호하고 올해도 3% 내외의 경제성장이 전망되고 있지만 한국 경제를 향해 거세져만 가는 미국의 통상 압박, 한국GM의 국내 공장 철수 등 국내 경기의 발목을 잡을 요인이 산적한 상태다. 올 1월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70.4%로 전월 70.2%에 비해 0.2%포인트 높아졌지만, 절대 수준에서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최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평균가동률이 2개월 연속 70% 초반에 머문 것도 거의 20년 만에 처음이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계부채를 10% 이상 줄이는 디레버리징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탄탄한 경기상승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반면에 우리 경제는 저금리를 이어가면서 가계나 기업이 부채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하지 못해 금리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최근 가계부채 관리 강화로 은행권 대출이 어렵게 되자 제2금융권과 대부업으로 가계부채가 쏠리게 됐고, 부동산 대출 규제가 강화되자 은행권은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자영업자 대출을 급격히 늘렸다. 금리 상승 시 일차적 타격은 부채 의존도가 높은 자영업자나 한계가구 및 한계기업이 될 것이며, 이들을 중심으로 디레버리징 사이클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벌어진 미국발 금융시장 버블 붕괴 공포는 수출 활황으로 잠시 안주해 있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메시지다. 세계 경제 둔화, 글로벌 금리 상승 추세가 심화된다면 한국도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경고다. 거세지는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에 맞춰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세상에 착한 금리는 없다. 닥칠 수 있는 위기 가능성을 열어두고 부실 위험이 있는 기업과 가계의 대응책을 미리 강구해 금융시장 불안을 막는 대비책을 재정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