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GM이 한국GM 군산공장 폐쇄를 전격 발표한 뒤 배리 엥글 총괄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사장이 국회를 찾아 여야 지도부를 만났다. 정치권이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들썩이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한 행보다. GM 수뇌부가 한국이 정치논리, 지역논리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훤히 꿰뚫고 있음이 분명하다. 특히 군산은 정부·여당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생각하는 호남지역이라는 점까지도 말이다.

엥글 사장을 만난 여야 원내대표, GM 사태 태스크포스 소속 의원들은 저마다 훈수를 늘어놓기 바빴다. “군산공장 폐쇄 발표 전에 국회를 방문하지 않아 아쉽다”는 말까지 나왔다. 엥글 사장은 “한국에 남아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했지만, 정치논리로 해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지금 한국에서는 정치권 말고도 GM을 상대하는 ‘사공’이 넘쳐난다. 청와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산업은행 등이 다 그렇다. 정부 내 협상창구가 어디인지조차 불분명하다. 지방선거에서 각당 지방자치단체장 후보가 GM 사태와 관련해 온갖 공약을 쏟아낼 것 또한 불 보듯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해결책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적 해법이 우선되면 한국GM 사태를 야기한 근본 원인인 ‘고비용·저효율’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날 공산이 크다. 특히 정치가 노사 자율로 해결해야 할 문제에까지 개입하면 노사관계 개선도, 노동개혁도 완전히 물 건너간다. 이런 환경에서는 아무리 정부 자금지원이 이뤄지고, 신차가 배정된들 이윤을 내는 공장이 될 리 없다. 공장 폐쇄가 잠시 미뤄지는 것일 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다.

정치권은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하고, 부처는 저마다 말이 다르고, 여기에 정치·지역논리가 가세하면 GM과의 협상은 필패로 끝날 게 자명하다. 더구나 정부 자금지원이 한국GM 근로자 인건비를 국민 혈세로 보전해주는 식이 되면 강성노조 역시 전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고 만다. 지금이라도 GM을 상대하는 협상창구부터 단일화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