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국회 4차산업혁명특위를 보는 눈
국회 특별위원회에 대한 추억은 별로다. 감투, 특수활동비 소진 등을 위해서인지 특위가 남발돼 온 데다, 이름과 달리 특별했던 경우가 드문 탓이다. 예외가 있다면 16대 국회 마지막 정치개혁특위다. 17대 총선 직전이었던 2004년 2월9일, 여야가 깨끗한 정치를 표방한 이른바 ‘오세훈 정치자금법·선거법’이란 정치관계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2004년 정치개혁 성공은 훗날 학계에서 ‘오세훈 선거법 합의과정의 정치경제학’이라는 논문으로 이어질 정도였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는 신(新)제도주의 관점에서 ‘경로의존적 정치개혁 실패’가 어떻게 ‘경로창조적 정치개혁 성공’으로 갈 수 있었는지를 6가지 요인으로 설명했다. “1)정치·정치인의 제도적·행태적 문제점이 진화적으로 누적돼 가다가, 2)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3)국민의 정치개혁 요구가 급속도로 증가해 정치권이 당리당략적 의사결정을 계속하기 어렵게 되고, 4)정치개혁 반대가 임박한 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게 자명해지면서, 5)기득권을 포기하고 정치개혁을 추진하려는 인사들이 정치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때, 그리고 6)국민의 일반적 합의가 있는 구체적 정치개혁안이 존재할 때 유권자 힘은 정점에 이르고 그 힘이 정치개혁을 이끌어낸다.”

국회 4차산업혁명특위가 6개월 시한으로 활동에 들어갔다. 새로운 산업혁명을 위해 선제적 규제개혁 입법을 하겠다는 취지다. 위 인용문에서 ‘정치개혁’을 ‘규제개혁’으로 바꾸고 6가지 요인을 음미해 봤다. 규제개혁이 국민의 일반적 합의가 어렵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특위가 성공할지 솔직히 회의적이다. 20대 국회 들어 발의된 법안 1000여 건 중 규제법안이 690여 건에 달한다(대한상공회의소). ‘경로의존적 규제개혁 실패’로의 질주가 멈출 기색이 없다.

그래도 국회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청와대는 규제개혁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고, 정부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말잔치만 늘어놓고 있다. 부처는 저마다 ‘용비어천가’만 부를 뿐 어디서도 규제개혁 총대를 멜 생각이 없다.

혁신성장을 하려면 규제개혁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수혜자 발생은 불가피하며, 구조조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식이 ‘더불어 잘사는 경제’라는 국정목표 앞에만 서면 맥을 못 춘다. 여기에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목표까지 더해졌다. 그 대가가 조시 애플턴의 책 제목대로 《성가신 존재: 시시콜콜 참견하는 권력》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국회, 정부와 달리 경쟁을 해야 하는 기업이 느끼는 위기감은 훨씬 크다.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8’을 둘러본 국내 기업인들은 “중국이 첨단기술은 물론 모든 산업에서 한국을 이미 추월했다”고 말한다. 인공지능(AI)보다 중국에 쇼크를 받은 모습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중국에 없는 규제만이라도 빨리 없애주면 안 되느냐”고 한탄한다.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도 “중소기업이 마음껏 일할 수 있게 규제를 중국 이하로 줄여 달라”고 호소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년 전 발표한 ‘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규제정책 방향’은 지금도 경청할 게 있다. 잘 모르겠으면 국제 조화, 즉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구하라는 권고다. 국가라면 국내 기업이 다른 나라 기업과 최소한 같은 조건에서 싸울 수 있게는 해 줘야 정상이다.

국회가 도출한 4차 산업혁명 대응 52건의 입법과제에는 원성이 자자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 문제 등이 포함됐다. 국회 4차산업혁명특위 6개월이 향후 60년(콘드라티예프 장기파동 주기)의 국가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어느 당, 어느 의원이 뭘 했는지 낱낱이 공개돼야 한다. 혹시 아는가. 선거가 임박하면서 유권자 힘이 정점에 달해 정치권이 어쩔 수 없이 규제개혁을 할 날이 찾아올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