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기업은 사회적 기업일 수 없다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같은 공기업은 ‘경제적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가.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28일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면서 “공공기관(공기업 30개, 준정부기관 89개, 기타 공공기관 202개)은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가는 기관으로 변해야 한다”며 경제적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현행 공공기관 평가는 효율성, 채무관리, 품질경영, 사회적 책임, 안전·환경 등을 고르게 평가하고 있는데 개편방안대로라면 일자리 창출, 균등한 기회와 사회통합, 안전·환경, 상생협력 및 지역발전, 윤리경영 등 다섯 가지 기준의 사회적 가치를 주로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사회적 가치 배점은 100점 만점 중 40~45점으로 엄청난 비중을 갖게 됐다.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위원회를 통해 내놓은 ‘사회적 경제 활성화 방안’에서 정부는 국가계약 낙찰 기준에 사회적 기업 가점을 기존 1점에서 2점으로 늘리기로 하는 등 사회적 기업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놓았다. ‘사회적 경제’란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기존 시장경제와 달리 사람과 분배, 환경 보호 등의 가치를 중심에 두는 경제를 말한다. ‘사회적 기업’이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영리활동을 하는 기업이나 조직을 말한다.

또 행정안전부는 지난 2일 ‘지방계약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사회적 기업이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사업을 수주할 때 수의계약할 수 있는 규모를 현행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올렸다. 이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임금 등 현금성 직접 지원 외에 판로도 확대해 주겠다는 취지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사회적 기업에 속한 기업이 5000여 개를 헤아린다. 사회적 기업으로 인가받은 곳이 1877개로 고용노동부가 관장하고 있으며, 사회적 협동조합은 844개로 기획재정부가, 자활기업은 1300개로 보건복지부가, 마을기업은 1446개로 행안부가 관장하고 있다. 이 개정안은 특혜성 판로 확대를 동원해서라도 사회적 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문 대통령의 ‘사회적 경제 활성화 방안’의 후속 조치라고 볼 수 있다.

공공기관을 평가할 때 사회적 가치를 주로 보는 것이나 지자체가 사회적 기업을 주로 지원하는 것은 경제적 가치보다는 사회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문재인 정부 철학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공기업의 사회적 가치 실현은 공기업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꾀할 수 있도록 경제적 가치를 실현하는 토대 위에서 추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 아래서 오늘날의 경제 구조를 이뤘다. 공공기관 평가에서 경영의 효율성이나 재정건전성보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라고 할 수 없다. 공기업도 기업이므로 효율성, 생산성, 수익성을 강조하는 경제적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 공기업이 사회적 가치만을 추구하고 경제적 가치를 등한히 한다면 기업 운영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경영이 방만하게 돼 자칫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기업으로 전락할 수 있다. 공기업의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균형 있게 평가하는 방안을 정립해야 하는 이유다.

또 수의계약 확대를 통해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겠다는 행안부의 ‘지방계약법 시행령’은 경쟁력 있는 민간 중소기업의 시장 진입 기회 자체를 차단하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사회적 기업의 절반가량이 인건비도 벌지 못할 만큼 영세하고 열악한 상황이므로 자칫 부실기업에 세금을 지원하는 결과로 귀결될 수 있고, 이들의 제품이나 서비스 품질이 수준 이하일 수도 있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등록한 기업 수만 집계할 뿐 경영 상황이나 해산·인가 취소 등 사후관리를 하지 않아 정확한 실태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더욱 염려되는 것은 사회적 가치와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전면에 내세우다 보면 지난 70년간 다져온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측면에서 사회적 가치를 생각하는 공기업 경영은 바람직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 가치 추구를 우선시하면서 사회적 가치 추구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독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성현 < 사회적책임경영품질원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