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의 논점과 관점] '산타 정부, 어버이 국가'
태풍 홍수 같은 재해는 인간이 대자연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절감하게 한다. 포항 지진이 그랬다. 정부는 포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긴급 구호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민간 기부도 적지 않다. 물론 부족할 것이다.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늘 모자라는 게 자금이다. 빌 게이츠에게도 여유자금은 없어 보인다. 자선재단 지출의 우선 순위를 놓고 고심한다는 걸 보면 그렇다. 그래도 재원 배분을 두고 고민하다 보면 한 발씩 나아가는 게 인간사다.

선례없는 포항 지진피해 등록금 지원

정부가 포항 지진피해 가구 대학생들에게 1년치 등록금을 주기로 했다. 대상은 3000여 명, 100억원이 든다. 주민센터에서 ‘피해사실확인서’만 떼면 되니 이 지역 대학생은 전원 ‘국가장학금’을 받게 됐다.

‘산타 선물’ 같은 이 결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전의 어떤 재해 때도 없던 지원이다. 선례도 없고, 법적 근거도 부족하다. 대학생이 있는 집과 없는 집 간의 차별 논란이 뒤따른다. 앞서 지진을 겪은 경주와의 형평은 또 어떻게 하나. 또래의 이 지역 고졸 중소기업 근로자도 동의할까. 그런 점에서 공정한가. 결과적으로 ‘특별재난지역에서는 고교생 학비를 면제한다’는 법규도 무시됐다. 지진만 특례로 하는지, 포항만 예외인지, 등록금을 지원해주는 지진의 기준은 무엇인지, 많은 의문거리를 남긴다. 즉흥 행정은 아닌가.

착한 의도라고 다 용인될 수는 없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善)으로 포장돼 있다’는 금언에 거듭 귀 기울인다면 더욱 그렇다. 인터넷에는 “대학생 투표권을 의식한 매표행위”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그러고 보니 또 선거다. 지방선거가 반 년도 남지 않았다. 정부는 산타가 아니라는 사실은 선거철만의 진실이 아니다.

방향을 돌려 ‘임대주택 활성화 방안’이나 ‘가계부채 감축 대책’을 돌아보자. 등록금 지원과는 다른 갈래의 정책이지만 본질은 한뿌리다. 심화되는 국가개입주의다. 다주택자를 임대사업자로 끌어내겠다는 정책은 무엇보다 너무 복잡하다. 한 채, 두 채의 경우가 다르고 집 크기와 가격도 변수다. 세금 감면도 몇 가지 조합인데, 건강보험료 부담까지 연결시켰다. 고차방정식 행정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게 됐다.

‘어버이 국가’처럼 모든 것을 세세하게 감독하겠다는 의지는 가계부채 대책에서도 드러났다. 주택대출 억제로 가더라도 정부는 큰 원칙만 제시하고 각론은 채권자인 은행에 맡기는 게 좋다. 금융산업 발전, 시장 기능 활성화, 자기책임 강화 원칙에 맞다. ‘만기친람 정부’가 창구 상담안까지 짜다 보니 대출가이드는 책 한 권이 됐다. “은행원도 과외받을 판”이라는 푸념은 금융업이 퇴보하는 소리에 다름 아니다.

한 손 '퍼주기' 다른 손은 규제 강화

포항의 지원이 ‘산타 정부’의 전형이라면 개인 빚 관리 정책 등은 전근대 ‘어버이 국가’(국친사상)의 잔재다. 한 손은 산타처럼 시혜 전담, 다른 손은 디테일까지 쥐는 규제 기능이다. 양손 모두 작은 게 좋다. 덜 쓰면 더 좋다. 그래야 기업이 성장하고 국민은 강해진다.

시혜도 규제도 큰 정부의 길이다. 큰 정부에 대한 우려는 팽창 예산이나 지출 구조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비대해진 조직도 겉모습일 뿐이다. 산타가 선물 주듯 나눠주기가 잦아지고, 다른 쪽에서는 개입·간섭·감독이 늘어나는 게 공공부문 비대화의 근본 문제다. 시간이 지나면서 개인은 나약해지고 의존적으로 될 것이다. 그런 개인의 합인 국가는 과연 부강할까.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영국인들에게 말했다. “정부는 없다. 당신과 당신 가정뿐이다.” 역설적으로 대처 시절 영국은 더 강했다. 균형 행정, 절제된 정책이어야 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