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ICO, 4차 산업혁명 인프라 구축 과정으로 생각해야
‘가상화폐 ICO 열풍’이 불고 있다. ICO는 초기코인판매(initial coin offering)의 약자로, 블록체인 기반 프로젝트를 위한 펀딩 방법이다. 자금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가 온라인 플랫폼 등을 활용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자금을 모으는 방식인 크라우드 펀딩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크라우드 펀딩에는 상품을 선(先)판매하는 방식이 있다. 예를 들어 5000원짜리 커피 100잔을 100명에게 선판매하면 한 번에 5000만원의 투자금을 모을 수 있다. ICO는 커피 대신 코인(가상화폐)을 선판매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ICO가 다른 점은 크라우드 펀딩의 커피는 커피일 뿐이지만 가상화폐는 복잡한 비즈니스 모델과 함께 고도의 기능을 약속하고 발행한다는 점이다.

다만 초기에 발행된 가상화폐는 기능이 없거나 제한된다. 2013년 7월 ‘마스터코인’이 최초로 ICO를 했다. 가상화폐로 널리 알려진 ‘이더리움’은 2014년 ICO로 자금을 모았다. 이더리움 아이디어는 2013년, 당시 19세의 러시아계 캐나다인 비탈리크 부테린이 제안했다. 전 세계의 컴퓨터를 P2P(개인 대 개인) 네트워크로 엮고 강력한 프로그래밍 능력을 갖게 하면(‘튜링 완전성을 갖는다’고 한다) ‘스마트계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뉴스의 맥] ICO, 4차 산업혁명 인프라 구축 과정으로 생각해야
스마트계약은 디지털 형태로 명시된 계약 당사자 간 일련의 약속으로, 1994년 미국의 프로그래머 닉 자보가 처음 제안한 개념이다. 블록체인 기술이 계약에 신뢰를 제공해 중간에 제3자가 개입하지 않고도 계약이 이행되도록 할 수 있다. 금융거래, 무역, 보험, 각종 증명처리 등 다양한 형태의 계약을 컴퓨터 프로그램화해 사용할 수 있다. 부테린은 이 스마트계약을 맺을 수 있는 플랫폼 프로젝트를 위해 ‘이더(Ether)’라는 가상화폐를 발행하고 이를 선판매해 200억원가량 모았다.

이더리움 프로젝트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2018년 후반에야 완성되도록 계획돼 있다. 이를 커피숍에 비유한다면, 초기에는 커피가 아니라 뜨거운 물만 서비스하다가 최근에서야 아메리카노 커피가 나오고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계획대로라면 2018년이 지나서야 모카커피나 카페라테처럼 고유한 풍미를 가미할 수 있도록 완성된다는 것이다. 아직 이더리움의 프로그램 에러가 다수 발견되는 이유다. 2018년 이후에 완성되더라도 에러가 완전히 사라질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다.

거래되는 가상화폐 1000종

이렇듯 완성되지 않았고 에러가 자주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이더리움이 제공하는 스마트계약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전체를 크게 바꿀 만한 ‘혁신’이라는 데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이더리움기업연합(EEA:Ethereum Enterprise Alliance)에는 HP 도요타 시스코 인텔 JP모간 NTT를 비롯한 200여 개의 크고 작은 기업 및 금융회사가 가입해 있다. 한국 기업으로는 삼성, 법무법인 세움, 블록체인 벤처 블로코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더는 현재 한 개에 35만원 이상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이더뿐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발표된 가상화폐는 2만 종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대충 1000종가량이 거래되고 있다.

대부분의 ICO는 이더리움 프로젝트와 비슷하게 진행된다. 처음에는 완성된 제품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만 있는 백서를 출간하고 맹물부터 팔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4~5년이 지나면 백서에 있는 대로 비즈니스 모델이 구현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 전문가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ICO에서 주장하는 비즈니스 모델의 90% 이상이 실패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부분 실패할 코인들이 상상 이상의 가격에 거래되는 것은 비정상적인 과열 현상임에 틀림없다. 비트코인은 미국에서 최근 개당 1만1000달러를 넘는 가격에 거래되는 등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올 들어서만 900% 폭등했다. 롤러코스터에 비유될 만큼 변동 폭이 크다. 한국의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은 세계 1위 규모로 성장할 정도로 뜨겁다. 지난 8월19일 하루 거래량이 2조6000억원을 넘어 코스닥시장 하루 거래 총액을 뛰어넘었다.

이런 과열 현상 뒤에는 다수의 조작세력이 있다는 소문이 나돈다. 군소코인은 이들 세력에 의해 쉽게 가격이 조작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비트코인 캐시는 중국 최대 비트코인 채굴업체인 비트메인의 우지한 대표나 미국의 유명한 비트코인 투자자 로저 버 등에 의해 조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도 몇몇 가격조작 세력이 있어 외국 세력과 연계하고 있다는 소문도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이상 과열 현상에 편승한 사기 범죄다. 최근 검찰은 ‘OO코인’이라는 가상화폐 투자 설명회를 열고 “단기간에 100배 이상의 이익을 거둘 수 있다”며 피해자들을 속여 200억원 이상 이득을 취한 사기꾼 일당을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한국형 암호화폐를 개발해 126개국에서 특허를 냈고 대기업에서 투자받아 코인을 시중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고 홍보했으나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금융당국이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투기적 거래에 사기범죄 기승

그러나 최근 당국의 규제 강도는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9월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열고 기술·용어 등에 관계없이 모든 형태의 ICO를 금지했다. “ICO를 앞세워 투자를 유도하는 유사수신 등 사기 위험 증가, 투기 수요 증가로 인한 시장 과열 및 소비자 피해 확대 등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이란 이유에서다. 더 나아가 정부는 지난 4일 가상통화 대책 주무부처를 금융위에서 법무부로 이관하고 ICO뿐 아니라 가상화폐 거래 자체를 규제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설익은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한 ICO를 막아 순진한 투자자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모든 ICO를 사기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를 악용한 범죄가 있다고 하더라도 19세의 부테린처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ICO가 좋은 펀딩 방법이다. 맹아단계에 있는 가상화폐라는 새로운 산업을 보호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블록체인기술 기반 허물어선 안 돼

ICO를 전면 금지한 국가는 중국과 한국 두 나라뿐이다. 캐나다는 ICO를 적극 유치하겠다고 선언했고, 스위스는 수년 전부터 블록체인의 성지로 불리는 ‘크립토 밸리’를 구성해 ICO를 하는 벤처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호주와 싱가포르는 ICO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불법이 되지 않도록 유도하고 있고 미국은 ICO가 기업공개(IPO)와 같은 정도의 규제 준수를 하도록 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핀테크(금융기술) 등 금융산업 육성을 위해 인허가 규제를 없애겠다고 공언해온 금융당국이다. 이런 정책 기조가 성공적으로 이어지기를 많은 금융인과 학계는 기대하고 있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다. 이제 시작되고 있는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은 4차 산업혁명의 인프라가 되는 ‘신뢰’를 제공하는 산업이다. 그 기반을 허물어뜨리는 규제는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교통사고를 막자고 자동차산업을 없애는 것이 금융당국이 원하는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이영환 < 차의과학대 경영대학원 부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