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칼럼] 앙갚음의 맞대응과 '뺄셈 정치'의 덫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어느덧 7개월이 됐다. 대선 기간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통합을 굳게 약속했다. 취임사에서도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선언했다. 나아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국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소통해 국정 동반자로 함께하는 자세로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새삼스럽지만 참으로 지당한 얘기다. ‘대통령’이라는 어휘 자체가 모든 국민의 대표이자 지휘자며, 대리인이요 중재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다수 국민은 새 정부가 시대정신을 좇아 양방향의 ‘협치(協治)’와 ‘덧셈’의 국정 운영에 나서줄 것으로 기대했다. 대통령 탄핵심판으로 쪼개진 ‘촛불’과 ‘태극기’의 앙금이 여전하고 대선 표심의 세대와 지역별 차이도 상당했기에 국민통합은 누가 봐도 절박한 과제였다.

그러나 지난 몇 달간 국정은 이런 바람과 사뭇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적폐 청산’이 다른 모든 의제를 압도하면서 그와 길항 관계에 놓인 국민통합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게다가 야당이 집권하던 지난 정부들의 허물만 적폐로 들먹여지면서 ‘표적 수사’니 ‘정치 보복’이니 하며 반발을 사게 됐다. 급기야 야당 일각에선 새 정부의 ‘신(新)적폐 저지 특별위원회’를 구성한 데 이어 ‘내란죄’까지 거론하는 등 정국이 확전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지난 주말엔 ‘국회선진화법’ 제정 이후 그나마 법정시한만큼은 지키는 관행이 확립되는가 싶던 예산안 처리마저 무산되고 말았다.

우리는 절차 민주주의가 꽤 진전됐지만 편 가르기와 쏠림에 따른 대립과 갈등이 일상화돼 있다. 더욱이 ‘아니면 말고’ 식의 침소봉대, ‘찬성을 위한 찬성’과 ‘반대를 위한 반대’ 등 소모적인 정쟁이 국정의 발목을 잡아왔다. 그 결과 실체민주주의는 여전히 취약하고 국리민복, 백년대계보다 당리당략이 앞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방송법 개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 해군기지 건설처럼 여당과 야당의 지위가 뒤바뀌면서 찬반 의견이 돌변한 사례들이 그 방증이다.

덫에 걸린 것 같은 이런 정국 상황은 ‘용의자의 딜레마(PD) 게임’에 비견될 수 있다. 여야가 대화와 타협으로 더 나은 ‘우등균형’으로 옮겨갈 수 있는데도 정치적 복선과 불신 때문에 협력하지 않고 ‘열등균형’에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횟수가 정해진 PD 게임이라면 비협력전략은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는 고육지책으로 양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정은 무한 반복되는 게임이다. 특히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을 넘어 적어도 한 세대는 앞을 내다보고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 정치학자 로버트 액설로드는 PD 게임을 200회 반복한 시뮬레이션에서 처음엔 협력하되, 이후엔 상대 전략을 답습하는 ‘맞대응’(tit-for-tat·TfT) 전략의 우월성을 확인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 장기적으로 최선의 전략인 셈이다.

그런데 맞대응은 오해가 생기거나 상대의 악의 없는 실수에도 협력 기회를 축소해 비협력이 증폭되는 약점을 지닌다. 따라서 두 차례까지는 상대의 비협력을 용서하고 계속 협력하는 ‘Tf2T’ 전략이 단순 ‘맞대응’보다 더 나은 성과를 거둔다. 일반적으로는 비록 상대가 비협력해도 일정 확률로 협력하는 ‘관대한 맞대응’(GTfT) 전략의 성과가 가장 우수하다. 요컨대 게임이 오래 지속하면 호혜적 이타주의에 입각한 우호 전략이 기계적인 앙갚음 전략보다 우월하다. 이는 굶은 동료를 챙기는 흡혈박쥐나 척후병 역할을 번갈아 맡는 실고기의 행태에서도 확인된다.

장황하게 얘기했지만, 게임이론의 시사점은 간명하다. 정부와 여야는 서로 다른 점보다 최소공배수를 찾아 그 동심원을 확대 재생산해야 한다. 그러자면 정부와 여당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현실적으로도 ‘여소야대’와 ‘국회선진화법’의 까다로운 장벽을 극복할 다른 묘안을 찾기도 어렵다.

초심처럼 정당과 계파, 지지자와 반대파를 초월해 호혜적 이타주의 전략을 구사하는 ‘대통령’으로 올라서야 한다. 앙갚음의 ‘맞대응’과 뺄셈을 답습하는 ‘소통령’으로 머물러선 안 된다.

박재완 < 성균관대 교수·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