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기 말까지 기후변화로 멸망하는 국가가 나타날 것이란 경고가 나왔다. 기후변화 정책과 법률 전문가인 맥신 버킷 미국 하와이대 법대 교수는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1일까지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서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 주최로 열린 ‘IBS 기후변화 및 인류 이동 콘퍼런스’에서 “기후변화로 삶의 터전을 잃은 난민이 이미 발생했다”며 “일부 국가는 우려 수준을 넘어 멸망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21세기 말, 기후변화로 멸망하는 국가 나올 수도"
이탈리아와 스페인, 터키, 모로코 등 지중해 연안 국가는 심각한 가뭄에 몸살을 앓고 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수년 새 강우량이 줄면서 농작물 생산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지중해 연안 주변의 중동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버킷 교수는 “심각한 가뭄과 해수면 상승의 영향으로 선진국·저개발 국가를 구분하지 않고 정착지를 떠나야 하는 기후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선 루이지애나주 미시시피강 하류 지역을 비롯해 영구 동토층이 녹고 있는 알래스카 해안가에서 잦은 하천 범람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이주자가 늘고 있다.

남태평양과 카리브해 저개발국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버킷 교수는 “마셜군도와 투발루, 키리바시, 몰디브는 지금 상황이 유지된다고 해도 21세기가 끝날 때까지 주거가 불가능해진다”며 “사실상 멸망하는 과정을 겪고 있다”고 경고했다.

일부 국가는 농산물 생산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쌀과 콩은 온도와 강수량 등 기후 민감도가 큰 작물이다. 기온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작황이 크게 바뀌는 ‘티핑 포인트’ 유전자가 있다. 인도네시아는 태평양 동쪽 적도 해수 온도가 올라가는 ‘엘니뇨’ 현상이 나타날 때마다 심각한 가뭄을 겪는다.

전문가들은 한반도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부산 해운대, 인천 송도 같은 해안가에 신규로 건설된 도시와 주요 항만이 심각한 피해를 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5차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가 온실가스를 저감해도 21세기 말 한반도 서해와 남해 해수면은 각각 65~85㎝, 동해는 90~130㎝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산화탄소가 바다에 녹아 수소이온 농도지수(pH)를 떨어뜨리는 산성화 문제도 심각하다. 악셀 팀머만 IBS 기후물리연구단장은 “바다가 산성화되면서 한국인이 오랫동안 즐기던 굴 같은 해산물과 어류 어획량이 감소해 바다에서 공급받는 단백질원이 큰 폭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古)기후 전문가인 피터 드메노컬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아프리카에 살던 초기 인류가 6만 년 전 세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나간 것도 기후변화가 원인으로 작용했다”며 “이번 기후변화가 또 한번 인류 대규모 이동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드메노컬 교수에 따르면 캐나다 곡창지대는 연평균 기온이 올라가 농업생산성이 좋아지면서 땅값이 치솟고 있다. IPCC 5차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토마스 슈토커 스위스 베른대 교수는 “파리협정 가입국이 제시한 목표량만큼 배출량을 줄여도 2100년이면 2.7도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다양한 에너지를 활용하는 ‘에너지 믹스’와 스마트그리드(전력망)를 활용해 탈(脫)수소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