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논점과 관점] 한국의 '떴다방 정당'들
정당의 정의(定義)에 관한 정치학자들의 견해는 다양하다.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영국 정치철학자인 에드먼드 버크의 정의다. 그는 “정당이란 주의(主義)와 정견(政見)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그 주의와 정견에 의거한 공동의 노력을 통해 일반적 이익을 증진하고자 결합한 단체”라고 요약했다.

일반적 이익은 공익을 뜻한다. 버크는 “제대로 된 공익 실현을 위해선 정책 일관성이 중요하며, 일관성을 유지하게 하는 확고한 이념과 철학이 정당의 기초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당 활동에 지속성이 있어야 그 이념과 철학이 축적될 수 있다는 게 그의 견해다.

안정적인 정당정치 발전은 그 나라 민주주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다. 한국은 어떤가. 이념과 철학보다는 선거 유불리에 따라 서커스단 가설(假設)무대처럼 세웠다가 접기를 반복한 게 한국 정당 70년사(史)다. 1948년 제헌국회가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국회의원을 당선시킨 정당의 평균 수명은 2년6개월에 불과했다. 국회의원 임기(4년)에도 훨씬 못 미친다. 10년 이상 같은 이름을 유지한 정당은 4개(자유당 민주공화당 신민당 한나라당)에 그쳤다.

말뿐인 '100년 가는 정당'

정당의 수명이 짧은 것은 정당이 인물을 만드는 외국과 달리 인물이 정당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당수(黨首)의 정치적 운명에 의해 정당 존립이 좌우되곤 했다. 1997년 국민승리21, 2002년 국민통합21,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등은 대선 직전 창당됐다가 몇 달도 안돼 사라졌다.

‘100년 정당’은 말뿐이었다. 2003년 11월 친노(친노무현)계는 열린우리당 창당 선언을 하면서 100년 정당을 호언했으나 3년9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2014년 1월 새정치연합 창당을 주도하며 역시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37일 만에 돌연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통합을 결의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들었다가 1년9개월 만에 탈당했다.

그가 창당한 국민의당은 통합도, 분당도 어려운 처지에 몰려 헤매고 있다. 극중(極中)주의를 내세우며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외치는 그에게 호남계가 반발하면서 지루한 내홍을 이어가고 있다. 두 세력은 애초부터 이념보다는 지난해 총선과 올해 대선을 겨냥해 급조한 당이니만큼 대선 패배로 그리 오래갈 것이라는 전망은 많지 않았다.

'가치관'과 '정견'은 뒷전으로

이합집산으로 따지자면 보수정당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풍전등화 위기에 처하자 의원 33명이 떨어져 나가 바른정당을 차렸다. 그러다가 1, 2차에 걸쳐 22명이 다시 한국당으로 복귀했다. 역시 이념적 차이 때문이라기보다는 살길을 찾아 떠났다가 별 뾰족한 수가 없자 다시 돌아온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정치 지형은 다시 한 번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주의’와 ‘정견’은 뒷전으로 밀릴 게 뻔하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이 100년 넘게 장수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흔들리지 않는 ‘주의’와 ‘정견’이 있고, 그에 따라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선거에 졌다고 해서 당 간판을 바꿔 달거나 당을 새로 만들지 않는다. 국민의 마음을 잡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한국에선 언제 100년 정당을 기약할 수 있을까. 가치관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눈앞의 선거 승리를 위해 이합집산하는 ‘떴다방 정당’이 더 이상 안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아직 헛된 기대인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