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불붙은 양자컴퓨터 전쟁
일반 컴퓨터로 1000년 걸리는 계산을 몇 분 만에 끝내는 획기적 속도, 현재의 슈퍼컴퓨터보다 수백만 배 연산이 빠른 ‘꿈의 컴퓨터’. 양자컴퓨터는 놀라운 능력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는 컴퓨터’라고 불린다. 사용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일 뿐이지만, 인공지능 개발에 꼭 필요한 수단이기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

기존 컴퓨터로 80만 년 걸리는 계산도 양자컴퓨터는 순식간에 해낸다. 0과 1의 나열·조합으로 데이터를 연산하는 트랜지스터 방식과 달리 양자의 중첩·얽힘 구조를 활용해 훨씬 다양한 데이터 조합을 해내기 때문이다.

창안자는 양자역학의 거장 리처드 파인만, 실질적인 작동원리를 밝힌 사람은 옥스퍼드대의 데이비드 도이치 박사다. 하지만 지금의 기술로는 양자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워 상용화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각국이 연구에 사활을 거는 것은 미래 문명을 좌우할 핵심 기술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물꼬를 튼 것은 캐나다의 디웨이브(D-Wave)라는 회사다. 2011년 양자컴퓨터의 초기 단계인 ‘D-Wave 1’에 이어 2013년 ‘D-Wave 2’를 개발했다. 가격은 1000만달러(약 110억원). 구글과 미항공우주국(NASA)에 이를 판매했다. 올해 초에는 1500만달러(약 164억원)짜리 업그레이드판을 내놨다.

2015년에는 구글이 일반 컴퓨터보다 1억 배 빠른 시스템을 선보였다. IBM은 지난달 49큐비트 양자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뒤, 연말까지 범용 양자컴퓨터 ‘IBM 큐(Q)’를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업계는 디웨이브·구글·IBM 3사의 경쟁을 주목하고 있다.

유럽도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양자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세르주 아로슈는 “양자컴퓨터를 이용하면 연산 능력 향상뿐만 아니라 수십만 종류의 화학물질을 분석하는 신약 개발이나 신소재, 인공장기 연구 등 고령화 사회에 필요한 기술 개발까지 크게 앞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중국이 세계 최대 양자연구소를 지어 연구 결과물을 군사 분야에 응용할 계획을 밝혔다. 일본도 추격에 나섰다. 다음주부터 일본 국립정보학연구소 등이 양자컴퓨터 관련 시제품을 기업들에 무료로 공개하기로 했다. 실용화 연구에 뒤진 만큼 국가 차원에서 기술 개발과 인재 육성을 돕겠다는 의도다.

양자컴퓨터 개발 경쟁은 북미 3사의 각축에서 미주·유럽·아시아의 3대륙 전쟁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나마 국내 연구진이 양자 실용화에 도움이 될 미지 입자의 존재 사실을 처음으로 증명해 냈다는 최근 뉴스가 반가울 따름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