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그제 경제자유구역 ‘네옴(NEOM)’ 건설 계획을 공개했다. 홍해 연안에 5000억달러(약 564조원)를 투입해 서울의 44배 규모(2만6500㎢)에 이르는 ‘규제 프리존’ 신도시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로봇 등 첨단 기술, 엔터테인먼트, 신재생에너지 등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이다. 규제를 확 풀어 중동의 비즈니스 중심지로 도약한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를 벤치마킹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세계 최대 도시권역인 미국 ‘뉴욕 대도시권’의 3배가 넘는 규모보다 더 놀라운 것은 개발 구상에 담겨있는 ‘파격적인 실용적 리더십’이다.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이자 근본주의 색채가 강한 사우디가 사법체계의 근간인 이슬람 율법 ‘샤리아’ 적용을 완화하면서까지 규제를 풀어 투자자와 인재를 끌어들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히잡을 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과 파티 등 서구식 문화를 즐기는 장면 등 ‘네옴 프로젝트’ 안내 동영상을 보면 “이곳이 남녀 합석도 금지하고 있는 사우디가 맞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보수파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명분보다 경제 문제를 우선시한 것은 ‘탈(脫)석유 경제전환’에 국가 흥망이 걸려있다고 판단해서다. 신도시를 세금과 외환 규제, 노조가 없는 ‘3무(無)’와 함께 이슬람 율법 적용도 배제하는 ‘특별구역’으로 운영키로 한 배경이다. 투자와 첨단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종교적 명분도 후퇴시킬 수 있다는 왕세자의 결단이 주목된다. ‘중동의 허브’ 자리를 놓고 벌어질 사우디 신도시와 두바이의 경쟁이 중동 전반에 친(親)비즈니스 바람을 불게 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경쟁력 있는 기업을 유치하려는 세계 각국 간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노동 유연성 제고와 법인세 인하, 규제 개혁 뉴스가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슬람 국가인 UAE의 두바이와 사우디는 종교적 색채를 걷어내면서까지 첨단 기업 유치에 발벗고나섰다. 정치 이슈들의 뒷전에 밀려 ‘시장’이라는 말조차 들리지 않는다는 한국의 풍경과 크게 대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