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뀌면 공공기관장 대부분이 임기와 무관하게 물러나고, 새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사가 그 자리에 ‘낙하산’으로 내려앉는 일은 오랜 관행이었다. 이번 정부 들어서 주춤하던 이런 관행이 최근 다시 가시화되고 있다고 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백운규 장관이 지난달 “공공기관장도 철학이 맞아야 함께 갈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뒤 한국전력 발전자회사 사장 4명이 사직서를 냈다. 길게는 임기가 2년 이상 남은 경우도 있었다. 일괄 사표를 받은 것이란 이야기가 파다했다.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국토교통부 산하 기관장들도 최근 몇 개월 사이 임기를 남겨둔 채 잇따라 물러났다. 공공기관은 아니지만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국무역협회의 김인호 회장도 최근 “정부가 사임을 희망하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내왔다”며 임기 4개월을 앞두고 사의를 밝혔다.

이 와중에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6월 당직자들에게 정부기관 파견근무 희망자를 모집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공공기관 등을 겨냥한 ‘보은용 낙하산 채용 시도’라는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당규상 문제는 없다”고 했지만 과거 정치권의 낙하산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키는 어려워 보인다.

집권당이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인사들로 공직과 주변 자리를 채우는 것을 무조건 비난할 수만은 없다. 다만 아무런 객관적 기준이나 범위도 없이 공기업, 공공기관은 물론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민간단체와 일부 기업의 임원 자리까지도 전리품 취급해 캠프인사 등을 내리꽂는 것은 분명 문제다. 무엇보다 임기가 남아 있는 기관장에게 사퇴 압력을 가하는 것은 공공기관 운영에 차질을 빚는 것은 물론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

‘적폐 청산’을 전면에 내걸고 있는 새 정부가 과거 정권들의 대표적 적폐인 이런 관행을 되풀이한다면 누가 ‘적폐 청산’의 진정성을 믿겠는가. ‘낙하산 인사와 임기 전 사퇴 압박’의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야 한다. 차제에 대통령이나 장관이 임명할 수 있는 공공기관 임원의 범위를 관련법에 명기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