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석의 이슈프리즘] 혁신성장을 위한 적폐청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4차산업혁명위원회 발족식에서 혁신성장을 강조한 것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문 대통령은 “혁신적 창업과 신산업 창출이 이어지는 활력 넘치는 경제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혁신친화적 창업국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주도 성장론만 보이던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에 혁신성장론이 추가된 것은 다행이다. 임금 인상을 통한 소비 촉진 등 수요 측면의 소득주도 성장만으론 ‘반쪽 성장’에 그칠 수밖에 없어서다. 신산업 투자 확대 등 공급 측면의 성장 전략이 절실하던 때에 혁신성장론은 시의적절했다.

혁신의 요체는 기득권 파괴

이제 중요한 건 어떻게 혁신성장을 하느냐다. 돈을 퍼부어 벤처 창업을 지원하는 게 혁신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다를 바 없다. 이 대목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이던 변양균의 최근 저서 《경제철학의 전환》을 다시 살펴보자.

그는 “혁신의 요체는 창조적 파괴”라며 슘페터식 혁신성장론으로 경제정책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역설한다. 3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반과 질서를 파괴해야 4차 산업혁명의 싹이 트고, 혁신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기존의 것을 파괴해야만 새로운 것이 나온다는 ‘혁신의 패러독스’다.

그럼 구체적으로 무엇을 파괴해야 할까. 두말할 것도 없이 경제 혁신을 가로막는 장벽들이다. 혁신이 일어나려면 신산업으로 자본과 인력이 자유롭게 이동해야 한다. 이걸 막고 있는 게 규제와 강성 노조다. 문재인 대선캠프 자문위원장을 지낸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규제 철폐와 노동 개혁이야 말로 혁신을 위한 핵심 과제”라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규제는 기존 산업과 기업의 안정적인 사업권, 거기에 얽힌 관료들의 이해 보호막이다. 해외에선 일반화된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핀테크 등의 신기술 스타트업이 국내에선 번번이 규제 장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이면엔 기존 사업자와 관료의 기득권 사슬이 똬리를 틀고 있다. 문 대통령이 밝힌 ‘규제 샌드박스’(신산업·신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나왔을 때 일정 기간 규제를 면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이 기득권 구조를 어떻게 파괴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규제와 노조의 적폐 털어내야

대기업 정규직의 기득권을 감싸고 있는 강성 노조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고임금 철밥통을 양보하지 않다 보니 비정규직 차별, 청년 실업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긱 경제(Gig Economy: 임시로 계약을 맺고 일을 맡기는 고용 형태)에서 필수적인 노동유연성은 강성 노조 체제에선 불가능하다. 시대 변화에 따라 노조도 바뀌는 노동 개혁이 절실한 이유다. 그런 점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이 바른 방향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 적폐 청산에 힘을 쏟고 있다. 전(前) 정부에서 쌓인 폐단을 걷어내는 작업이다. 정부는 미래 도약을 위해 불가피한 정리라고 설명한다. 적폐는 과거 정권이 만든 것만 있는 게 아니다. 기존 사업자와 관료,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도 우리 경제의 적폐다. 이 적폐야말로 미래 도약을 위해 꼭 청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혁신성장도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문재인 정부가 규제 철폐와 노동 개혁으로 경제 적폐를 청산하고 소득주도와 혁신의 ‘양날개’로 한국 경제를 비상시키길 응원한다.

차병석 편집국 부국장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