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장단기 균형 잡힌 정책이 필요하다
거시경제 설명에서 장기와 단기의 뜻은 매우 불명확하다. 일반적으로 시간 경과에 따른 경제 변수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 장기라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 장기에 별 의미를 두지 않은 경제학자로서 존 메이너드 케인스를 들 수 있다. 대공황 당시 케인스는 유효수요이론에 기반한 단기 정책이 빚을 부작용에 대해 고전학파가 비판하자 “장기 분석은 현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고 대응한 바 있다.

정부의 ‘8·2 부동산 대책’도 단기 대응의 성격이 큰 정책으로 볼 수 있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주택 가치가 높아져 가격이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비이성적으로 급등한 것은 언젠가 버블이 꺼질 것이기 때문에 아무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매우 적절치 않은 대응이다.

주택 가격 급등이 타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경제 주체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제 완화 등 장기적인 공급 측면의 정책 여력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금융 규제와 같은 다양한 단기적 수요억제 정책은 상당히 큰 의미를 가진다.

장기와 단기를 둘러싼 첨예한 논쟁은 최근 뜨거운 담론이 되고 있는 성장 정책에서도 나타난다. 임금 등 가계소득을 늘림으로써 소비를 확대하고 이를 성장으로 연결시키자는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으로의 소득 이전이 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는 데 주목한다. 그러나 이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보수 경제학계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단기적 경기관리 대책에 불과하며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공급 측면의 대책 없이는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루카스 비판(Lucas critique)’도 인용된다. 일자리 확대나 복지 분야에 재정지출이 급증하면 가계와 기업 등 시장 참여자는 미래의 조세부담 증가를 예상해 현재의 소비나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경우 단기적인 부양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추가적인 경기 회복이나 장기적 경제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단기와 장기 가운데 어느 쪽에 주안점을 두고 정책을 시행해야 할까? 대부분의 사안에서 단기와 장기적인 정책 대응이 공히 요구될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 나라 경제의 성장 전략은 국가의 장기 비전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다른 정책들에 비해 장기적 측면이 중시돼야 할 것이다.

다만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인구 고령화 등으로 구조적인 수요 부진을 겪고 있는 만큼 경제성장에서 단기적인 수요 촉진책의 의미가 커지고 있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듯싶다. 수요 부진에 더해 중국 등 신흥국의 공급 과잉으로 인플레이션이 과거에 비해 커다란 이슈가 되지 않게 돼 재정적자와 국가부채의 의미 재해석을 포함해 수요관리 정책 전반에 대한 시각을 재정립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성장 전략에서 장기적 측면이 중요하다는 입장에서 볼 때 최근 정부가 혁신성장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퍽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간 소득주도 성장론이 수요 측면을 부각, 공급 측 정책을 포함한 장기적 차원의 정책 보완이 요구돼온 것이 사실이다. 혁신성장 가운데서도 아직은 개략적인 일정만 나와 있는 4차 산업혁명 대응 태세의 구체화를 통해 중장기적인 성장력 확충 아젠다를 제시함으로써 정부의 성장 정책에 대해 폭넓은 지지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신민영 <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