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시진핑 생각'은 지도사상으로 승화할까
중국 한(漢)나라 관원이었던 사마천은 흉노전 패배를 규명하는 어전회의에서 포로가 된 장수의 처지를 간언하다가 무제의 노여움을 사 죽을 고비를 맞는다. 죽음 대신 치욕스러운 궁형을 당한 지 거의 10년 뒤 사마천은 대작 《사기(史記)》를 완성하고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포로가 됐던 장수가 흉노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무제의 총애를 받던 다른 장수가 나중에 흉노에 투항한 실제 결말을 마지막 장 ‘흉노열전’에 선명히 새겨 넣은 뒤였다. 만인의 생살여탈권을 쥔 황제가 판단력을 상실하고 도덕적으로 일탈해 천하가 어지러울 때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은 사기를 관통하는 인본주의로 승화됐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황제조차도 죽간에 새겨진 사초의 서슬을 피해가지 못했던 이 고사는 사마천의 혜안과 통찰력, 수십 년 쌓은 공(功) 덕택에 지금 찬란하게 빛을 발하지만 실은 중국 문자, 기록문화의 힘이기도 하다. 수천 년 역사에서 중국의 지배층은 시대를 불문하고 문장과 기록의 가치와 위험성을 일찌감치 간파한 사람들이다. 이 점에서 중국 공산당은 대륙을 주기적으로 통일한 ‘선배’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초창기 중국 사회주의의 초석을 놓은 마오쩌둥(毛澤東)은 군사전략가지만, 그에 앞서 혁명이론가요 문장가였다. 옛 소련에서 배운 교조적 사회주의자들의 이론 및 실천강령에 반기를 들고 ‘중국식’을 내세울 때마다 긴 문장으로 승부를 걸었다. 이는 ‘권력은 총부리에서 나온다’는 그의 경구로 전해진다. 그러나 국민당 전력에 크게 미치지 못했던 공산당은 농촌, 도시 저소득층이란 ‘민심의 바다’에서 격문을 통한 여론전, 사상전으로 지지를 얻어 대륙의 주인이 됐다. 마오 사후 중국 공산당의 국가전략은 몇 차례 대전환을 거쳤는데 이때 등장한 젊은 후계자는 예외 없이 걸맞은 이론틀을 들고 나타나 리더십의 골간으로 삼았다. 후계자 수련과정에서 공산당 당교(간부학교) 교장을 맡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마오 때나 지금이나 중국의 거의 모든 국가발전 전략은 지도사상을 나열하면서 시작된다. ‘13차 5개년 규획’과 ‘중국 제조 2025’도 예외가 아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毛)사상, 덩(鄧)이론, 삼개(三個)대표론, 과학발전관 등이 시간 순으로 등장해 뒤에 나오는 정책을 규율하는 것이다. 이 사상 혹은 이론들은 대부분 집권 후반기 개막을 알리는 5년 임기 당 대표대회에서 공식 추인되는 과정을 밟았다. 올가을 19기 당 대회는 ‘시진핑 생각’이 당장(黨章)에 삽입되는 것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문제는 콘텐츠다. 지난 5년 시진핑 총서기가 주창한 국가운영 노선이라면 ‘중국의 꿈’ ‘신창타이’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 제조 2025’ 등이다. 추상적이거나 범위가 넓고 반대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구체적인 것들이 섞여 있다. ‘중국 사회주의 발전방식인가’라는 의문이 따르는 것도 있다.

최근 수년의 당 공식문건들은 시 총서기 지도노선을 ‘일련의 연설에 나타난 정신’ 등으로 두루뭉술하게 표현해왔다. 이름을 붙여 ‘시진핑 사상(思想)’으로 뭉뚱그리면 어떨까. 지도사상의 마지막 두 칸을 차지하면서도 이름을 붙이지 못했던 현존하는 전임 지도자들도 얻지 못한 영예가 주어지는 셈이 된다. 지도사상으로서 불변성을 얻게 되면 향후 중국 공산당의 1인 리더십 특성도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다. 수교 25년. 시일이 지날수록 ‘차이나 임팩트’를 크게 느끼게 된 한국으로선 중국 집권당 당대회를 이웃나라 잔치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박래정 < 베이징 LG경제연구소 수석대표 ecopark@lger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