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용 칼럼] 소득·분배 주도성장은 성공한 적 없는 임시방편일 뿐
“경제의 역사는 곧 기술의 역사이며 근대의 번영은 발명을 기반으로 이뤄졌다.” 윌리엄 번스타인은 《부의 탄생》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경제 성장은 새로운 산업의 등장과 생산성 향상에 기인하며 이는 과학기술 혁신의 산물이라는 의미다.

세계가 풍요로운 문명사회로 발전해 온 과정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다. 중세까지만 하더라도 중국, 인도 등 동양보다 경제력과 기술력이 뒤진 유럽에서 혁신이 연이어 일어났다. 14~16세기의 르네상스, 15세기 초 시작된 대항해 시대, 16~17세기의 과학혁명 등은 과학기술 혁신의 기틀이 됐다. 이 시대의 과학은 신비의 영역으로 천체 운동에 관한 것이 주된 이슈였으나 과학적 합리주의, 즉 실사구시(實事求是)가 싹트면서 폐쇄적인 종교의 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코페르니쿠스와 티코 브라헤로부터 뉴턴에 이르기까지 과학 혁명기의 천재들은 근대화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나 본격적 산업혁명의 등장까지는 기술과 경험, 그리고 자본의 축적에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사실 산업혁명은 과학기술을 발명한 위대한 과학자보다는 그 기술을 산업화한 장인이나 기업가가 주축이 됐다.

1770년대 영국에서 일어난 1차 산업혁명의 주역들은 코크스 제철법을 개발한 에이브러햄 다비, 제임스 와트와 동업해 증기기관을 개량하게 한 매슈 볼턴, 그리고 방적기와 방직기 등을 발명한 기술자들이었다. 방직·철강·기계·철도산업이 상호 상승효과를 내면서 발전해 영국은 19세기 세계 최강의 산업국가로 부상했다.

2차 산업혁명은 1870년대 미국에서 일어났다. 1차 산업혁명 때와는 달리 독일, 프랑스 등도 과학기술 혁신은 활발했지만 산업화는 신생국가인 미국에 뒤졌다. 2차 산업혁명은 내연기관과 전기라는 에너지 산업을 통해 미국이 거대한 부를 축적하는 과정이었다. 석유산업의 록펠러, 에디슨과 전기발전 사업을 합작한 금융계의 JP모간, 철강업의 카네기, 자동차의 포드 등 자본가들은 미국 최고의 부자 자리를 놓고 전쟁을 방불케 하는 경쟁을 벌였다. 이때의 미국 산업사는 재벌의 역사라 할 정도로 기업가와 재벌기업의 역할이 컸다.

3차 산업혁명은 2차 세계대전 전후 발명된 컴퓨터, 반도체, 원자력, DNA 관련 기술 등이 원동력이 됐다. 컴퓨터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에커드 교수 등이 개발했고 반도체는 벨 연구소의 바딘, 브래튼, 쇼클리에 의해 탄생했다. 컴퓨터, 반도체 기술에 힘입어 전자정보통신산업은 빠르게 성장했고 디지털 혁명은 산업사회에서 정보지식사회로의 이행을 촉발시켰다. 반도체를 산업으로 만든 인텔의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 그리고 PC와 소프트웨어(SW) 및 스마트폰산업을 만들어낸 애플의 스티브 잡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3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며 세계적 부호가 됐다. 산업혁명 역사는 신기술과 혁신적인 제품이 발명됐어도 호기심 많은 탐험가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산업화한 선구자적 기업가나 자본가가 없었다면 오늘날 같은 문명을 만들기는 어려웠다는 교훈을 던진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는 창업 활성화 등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지만 별반 효과가 없다. 인위적인 정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젊은이들이 호기심을 갖고 스스로 창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창업 지원과 함께 성장을 도와줄 수 있는 산업 정책, 그리고 창업이 성공의 지름길이며 개천에서 용이 나는 길이라는 인식과 사회적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다. 젊은이들이 공무원, 교사 등 안정된 직업만 선호한다면 사회는 도전과 발전의 역동성을 잃게 될 것이다. 젊은이들이 도전과 경쟁을 하게 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공공 일자리 확대’ ‘소득 주도 성장’, ‘분배를 통한 성장’으로 일자리 창출과 경제 발전을 시키겠다는 발상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경제 성장 없이 소득은 증가할 수 없는데, 소득 주도 성장이 어떻게 가능한가. 대기업 및 고소득자의 곳간과 종자씨앗까지 털어 분배하자는 건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그런 정책은 성공한 예가 없다. 자칫하면 기업과 기업가의 엑소더스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국가의 앞날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미래지향적 발전 전략을 보고 싶다.

윤종용 < 전 삼성전자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