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세기의 대결
복싱에서 첫 ‘세기의 대결’로 불린 경기는 1910년 미국 잭 존슨과 제임스 제프리스가 벌인 세계 헤비급 타이틀전이었다. 두 해 전 존슨이 첫 흑인 챔피언에 오르자 백인들은 전 챔피언 제프리스를 ‘위대한 백인의 희망’으로 내세웠고, 이 경기를 ‘세기의 대결’로 이름 붙였다. 결과는 존슨의 KO승. 백인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흑인 20여 명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1938년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조 루이스(미국)와 막스 슈멜링(독일) 간 ‘세기의 대결’은 ‘인종 및 외교 전쟁’이었다.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 대통령은 루이스에게 “당신의 두 팔에 미국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독려했다.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은 “검둥이를 때려눕혀 게르만의 우수성을 알리라”고 슈멜링에게 주문했다. 결과는 루이스의 1회 KO승. 미 언론들은 “사악한 나치를 짓밟은 자유의 승리”라고 환호했다.

‘세기의 대결’에서 무하마드 알리를 빼놓을 수 없다. 헤비급 복싱 라이벌이었던 조 프레이저와의 세 차례 경기는 박진감이 넘쳤다. 1974년 아프리카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샤 외곽의 정글 한복판에 세워진 링에서 신흥 강자로 떠오르던 조지 포먼과 벌인 대결은 알리를 ‘전설’로 각인시켰다.

알리는 로프에 기댄 채 상대의 힘을 빼는 ‘로프 어 도프(rope-a-dope)’ 작전을 구사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던 말대로 8회 순식간에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날려 포먼을 쓰러뜨렸다. 1976년엔 일본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와 첫 이종스포츠 간 대결을 펼쳤지만, ‘세기의 졸전’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슈거레이 레너드 대(對) 토머스 헌스(1981년), 마빈 해글러 대 토머스 헌스(1985년), 마이크 타이슨 대 에반더 홀리필드(1997년),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대 마니 파키아오(2015년) 간 경기도 ‘세기의 대결’로 불렸다. 1977년과 1980년 두 차례 펼쳐진 홍수환과 염동균의 매치는 ‘국내판 세기의 대결’로 꼽힌다.

다른 종목보다 복싱에서 ‘세기의 대결’이 많이 이뤄지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각의 링’에 던져진 선수들이 모든 것을 걸고 승부를 펼치는 장면에 관중이 매료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프로모터들의 마케팅 전략도 한몫한다. ‘세기의 돈 잔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승자든, 패자든 경기가 끝나면 돈방석에 앉는다.

어제 메이웨더와 종합격투기 최강자 코너 맥그리거가 벌인 ‘세기의 복싱 대결’에서 메이웨더가 TKO승을 거뒀다. 애초부터 메이웨더가 유리할 것으로 점쳐진 경기였다. 맥그리거는 투혼을 발휘했지만, 이변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격투기에 밀려 쇠락해가던 복싱이 이 경기를 계기로 예전의 인기를 회복할 수 있을까.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