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주거 사다리 걷어찬 8·2대책
대다수 30~40대 직장인은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하는 꿈을 꾼다. 맞벌이 가구가 늘면서 서울 진입 욕구는 더 강해지고 있다. 출퇴근 전쟁을 피하려면 어떻게든 서울로 들어가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걸림돌은 서울에 집이 모자란다는 점이다. 통계청 기준으로 2015년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96%다. 전국 시·군·구 가운데 가장 낮다. 수요가 공급을 앞서는 서울의 집값이 오르는 건 한 정부 당국자의 말처럼 “지극히 비정상적”이지 않다. 엄밀히 따지면 서울의 실질 보급률은 더 떨어진다. 일반가구를 주택 수로 나눈 것이 보급률인데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 ‘숨은 수요’가 있어서다.

우선 41만 명에 이르는 외국인이 빠져 있다. 주민등록은 수도권이나 지방으로 돼 있지만 서울에 거주하는 대학생이나 직장인도 상당수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서울의 실질 주택보급률은 93% 수준으로 내려간다고 보는 전문가가 많다.

정부가 특히 간과하는 건 ‘교체 수요’다. 280만 채에 이르는 서울의 주택 중 약 42%인 117만 채가 완공된 지 20년이 넘은 낡은 집이다. 아파트만 따져도 36%에 이른다. 한때 서울 주택난의 스펀지 역할을 했던 분당, 일산신도시도 20여 년이 넘어가면서 장차 슬럼화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옷이 낡으면 새 옷을 사는 것처럼 노후주택 거주자들은 새 집으로 갈아타려는 욕구가 강하다. 이들이 서울 강남이나 이른바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의 집값을 움직이는 잠재수요자다. ‘8·2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뒤에도 여전히 뜨거운 청약시장은 주택의 질(質)에 눈뜬 수요층이 두텁다는 걸 보여준다.

3040세대의 ‘인 서울’은 대학입시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지만 8·2 대책 이전까진 허황된 꿈이 아니었다. 상환 능력이 있는 직장인은 모아둔 돈이 적더라도 은행 대출을 통해 내집 마련이 가능했다.

8·2 대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기 돈으로 집을 사라’는 것이다. 투기지역에선 대출이 집값의 30~40%밖에 나오지 않는다. 양도소득세, 분양권 전매 제한 강화 등의 조치도 있지만 파괴력은 대출 규제에 못 미친다. 그러나 평범한 3040세대가 저축으로 집을 장만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중도금 대출액도 줄어 청약을 포기하는 실수요자도 나오고 있다. 실수요자가 더 좋은 아파트로 갈아탈 수 있는 사다리가 사실상 끊겼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상황에선 전세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역설적으로 정부가 겨누고 있는 갭(gap) 투자자가 더 유리해지는 구조다.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사들이는 갭 투자자는 은행대출도 거의 받지 않는다. ‘실수요를 보호하고 단기 투기수요를 억제하겠다’는 정부 의도와 달리 주택시장이 ‘가진 자들의 리그’로 재편될 것이란 우려도 끊이지 않는다.

특정 지역의 집값이 오르는 건 그만 한 이유가 있어서다. 투기적인 요인이 전부는 아니다. 모든 원인을 투기꾼으로 돌리면 정책과 시장은 왜곡되기 십상이다. 요즘 수요자들이 원하는 건 입지가 좋은 양질의 주택이다. “입주량이 충분하다”는 정부의 진단은 그래서 더 공허하다. 재킷을 사고 싶은 사람에게 입고 있는 점퍼면 충분하지 않느냐고 타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언제까지 ‘누르고 보자’는 징벌적 규제를 되풀이할 것인가.

이정선 건설부동산부 차장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