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닻 올린 중기벤처부, 안만 보지 말고 밖을 보자
“문재인 대통령 집무실(여민관)에 있는 책상 의자가 어디 제품인지 아세요? 유명한 해외 H사 거예요. 우린 헤드(머리를 대는 부분)만 보고도 알죠.”

가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A사 관계자가 사석에서 한 얘기다. H사 제품은 인체공학적 설계로 유명한 고가 제품이다. 대통령이 외제 의자를 쓴다고 시빗거리로 삼을 생각은 없다. 대통령도 소비자의 한 사람이니 편안하고 일하기 좋은 의자를 골라 쓸 수 있다. 물론 가구업계에선 “국산 제품을 썼더라면 좋았을 텐데…”란 목소리가 없지 않다.

대화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한국 업체들이 왜 그런 제품을 만들지 못하는지로 옮겨갔다. 이 관계자는 “국내 기술력이 해외 업체에 비해 뒤떨어지는 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그에 따르면 국내에서 팔린 의자의 평균 가격은 10년 전에 비해 오히려 떨어졌다. 중국 등 해외에서 생산된 저가품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한국 중소 업체들도 어쩔 수 없이 저가제품 생산에 역량을 집중했다는 설명이다. 프리미엄 시장을 겨냥해 연구개발(R&D)에 과감하게 투자했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러기엔 우리 내수시장이 너무 작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국내 한정된 수요층을 겨냥해 큰돈이 드는 연구개발을 하자니 수익성이 떨어지고, 해외시장을 보고 도전하자니 만만치 않아 포기했다는 것이다.

A사와 비슷한 사례는 많다. 국내 시장에서 우수한 품질로 어느 정도 몸집을 키웠지만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고 성장이 멈춰버린 기업들 말이다. 잘나가는 중소기업도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넘어가려 하지 않는다. 회사를 쪼개 매출을 줄이며 ‘중소기업 신분’을 유지한다. 중소기업에 주어지는 여러 가지 혜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도 이유지만 ‘그런 지원 없이는 생존하기 쉽지 않다’는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의 중소기업 지원책은 규모와 다양성 측면에서 이미 세계적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올해 중소기업 지원 예산은 각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를 합쳐 16조6000억원에 달한다.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각종 정책도 1000여 가지가 넘는다. 그런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소·중견기업은 얼마나 늘었을까.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전체 수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대상 26개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수출 중소기업은 8만7000개로 전체 중소기업의 1.6%에 그쳤다.

중소기업계의 오랜 숙원인 중소벤처기업부가 26일 출범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울어진 운동장’(불공정 거래)을 바로잡고, 최저임금 인상·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소상공인을 지원하며, 창업·벤처 활성화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제 못지않게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키워주고 세계 시장에 진출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새 정부의 국정방향도 ‘중기·벤처가 주도하는 혁신과 성장’이다. 중소기업이 좁은 내수시장에서 머물러선 불가능한 얘기다. 글로벌 강소기업을 키우는 것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마지막 중소기업청장으로 기록될 주영섭 전 청장도 지난 25일 이임식에서 이런 당부를 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성패는 벤처·중소기업·소상공인 등 결국 범중소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로 귀결됨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문혜정 중소기업부 차장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