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수의 시사토크] 국정운영 계획 짠다는데…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부처 업무보고를 마치고 이달 말께 청와대에 공약 이행 방안을 보고할 것이라고 한다. 공약 201개를 5대 목표·20대 전략·100대 과제로 정리해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짠다는 것이다.

벌써 일부 공약은 수정이 불가피한 모양이다. 건설 중인 신고리 원전 5·6호기부터 혼선이다. 건설 중단을 공약했지만 공사를 중단시킬 법적 규정이 없어 산업통상자원부조차 당혹한 모습이다. 공공일자리 81만 개 만들기는 사실상 수정됐다. 81만 개 중 64만 개는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일자리 전환이 될 것이라고 한다.

AI·전기차 전력은 안 만드나

공약을 못 지킨다고 탓하려는 게 아니다. 안 되는 공약은 안 하는게 옳다.

장기 전력 수급계획부터 보자. 탈(脫)석탄·탈원전이 공약이라지만 이들을 대체해 필요한 전력을 생산하기 어려운 게 엄연한 현실이다. 2015년에 국회 보고를 거쳐 확정한 제7차 전력수급 기본계획(2015~2029년)에서 2029년 전원별 발전설비 비중은 석탄 26.7%, 원자력 23.7%다. 신재생에너지는 20%에 그친다. 그만큼 대체에너지 확보가 어려운 것이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에서는 지금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장차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AI)이 의료, 증권 등에서 인간을 대신할 때 들어갈 전력도 엄청나게 늘 게 뻔하다. 전기차도 늘어날수록 전기차가 쓸 전력 역시 당연히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전력은 어디서 만들어 낼 것인가.

공약 201개에 175조원이 든다는 게 당초 더불어민주당의 추정이었다. 그러나 턱도 없을 것이다. 공공일자리 81만 개만 해도 4조원을 잡았지만 실제 40조원이 들 것이란 비판이 비등하다. 논란인 추경을 봐도 정부가 4조2000억원을 들여 만드는 일자리는 간접 창출까지 포함해 11만 개 정도다. 그것도 올해 뽑을 중앙부처 및 지방 공무원 1만2000명의 인건비는 빠져 있다.

공약과 국정과제는 달라

재정 지출을 늘리려면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 새 정부는 이른바 부자 증세로 해결 하겠다지만 그게 가능하지 않다. 소득세와 법인세 모두 상위 10%가 전체 세수의 90% 안팎을 내는 반면, 전체 근로소득자의 절반 정도(2015년 소득기준 46.8%)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고소득층과 대기업 최고세율을 아무리 높여 본들 세수가 얼마나 더 늘어나겠는가.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를 지낸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은 원래 자타공인 세제 전문가다. 물론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사실 공약은 일방적으로 발표됐을 뿐 제대로 검증된 바 없다. 업무보고 한 달간 이런 공약을 모두 이행할 계획을 내라고 밀어붙일 게 아니었다. 공약과 국정과제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도 박근혜 정부 때도 공약을 100% 국정과제에 담지 않았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공약은 잊으라는 권고가 왜 나오겠나.

정부가 직접 월급을 주는 일자리를 만들고, 노후자금과 복지비용을 더 늘리고, 원가가 높은 에너지로 대체하려면 국민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 정히 모든 공약을 이행하겠다면 세금과 전기요금을 더 내라고 국민에게 말할 각오를 해야 한다. 권리만이 아니라 의무도 형평성을 갖춰야 한다. 국가가, 경제가 실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온전한 대한민국을 후대에 물려줘야 한다.

문희수 경제교육연구소장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