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아베의 장기 집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63)가 지난 28일로 총 1981일(약 5년5개월)을 재임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1980일)를 넘어섰다고 한다. 전후 총리 중 사토 에이사쿠(2798일), 요시다 시게루(2616일)에 이어 세 번째다. 드문 기록이기에 그의 장수 비결이 새삼 주목받는다.

아베는 정치세습이 흔한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금수저’다. 조부 아베 간은 중의원, 부친 아베 신타로는 외무상을 지냈다.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가 외조부, 사토 에이사쿠는 외종조부다. 부인 아키에 여사는 모리나가제과 사장의 딸이다. 정치자산과 재력을 다 갖춘 셈이다.

하지만 아베가 ‘배경’만으로 장수한다고 보면 큰 오산이다. 2006년 9월 최연소(52세) 총리가 됐지만 미숙함 속에 1년 만에 퇴진한 뒤 절치부심 끝에 2012년 12월 재집권했다. 그의 강점은 정치 스승들의 장점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실패에서 교훈을 찾는 치밀함에 있다. 아베는 야인 시절 혼자 배낭을 메고 이명박 대통령을 찾아오기도 했다. 총리가 된 뒤 ‘비즈니스 프렌들리’나 세일즈외교에 적극적인 걸 보면 MB를 벤치마킹한 듯하다.

아베의 장기집권은 무엇보다 만성 무기력증에 빠진 일본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게 비결이다. 아베 이전 일본은 5년간 총리가 6명이나 바뀌고 경제는 ‘뭘 해도 안 된다’는 패배주의가 만연했다. 2011년 대지진까지 겹쳤다. 꽉 막힌 느낌이라는 ‘폐색감(閉塞感)’이 당시 유행어였다. 기업들은 ‘6중고’를 호소했다. 6중고는 엔고, 세계 최고 법인세율(40%), 비싼 전기료, 부진한 FTA, 탄소감축 비용, 경직된 노동시장이다. “제발 한국만큼 해달라”는 게 재계의 요구였다.

이런 현실을 직시한 아베의 총리직 ‘재수’는 확실히 달랐다. 특히 아베노믹스의 ‘세 가지 화살’(통화완화, 재정확대, 장기 성장전략)은 초기 시행착오를 딛고 서서히 효과를 드러냈다. 청년 일자리가 넘쳐나고, 규제 혁파로 ‘뭐든지 되는 나라’로 변신하고 있다. 거꾸로 한국 청년들 사이에 ‘아베가 부럽다’는 얘기가 나온다. 일본의 6중고가 이젠 한국 기업들의 처지다.

물론 아베는 과거사와 영토문제, 전쟁할 수 있는 나라 지향 등으로 주변국과 마찰도 잦다. 하지만 미국과 더 밀착하고 국익을 위해서라면 굴욕도 감수할 태세다. 내년에 3연임에 성공하면 2021년 9월까지 역대 최장수 총리가 된다. 야권이 지리멸렬해 ‘아베 1강(强)’ 구도다.

아베, 영국 대처, 독일 메르켈처럼 내각제에서도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안정된 리더십이 가능하다. 타협의 전통이 희박한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