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대통령 성공, '우리 편'과 거리두기에 달렸다
1987년 민주화 이후 6명의 대통령이 공식처럼 되풀이한 게 있다. 나중에 흐지부지됐지만 누구나 처음엔 통합을 강조했다. 또 지근거리의 친인척이나 측근들로 인해 큰 곤경을 치렀다.

생판 모르는 타인보다 잘 아는 ‘우리 편’에 끌리는 건 인지상정이다. 정치에서도 혈육이나 오랜 동지, 열성 지지자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 있을까. YS, DJ는 아들을, 노무현과 MB는 형을, 박근혜는 최순실을 어쩌지 못했다. 질긴 연(緣)이 5년 단임 정권의 뒤끝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반면교사를 6명이나 뒀다는 점에서 운이 좋은 편이다. 피할 것, 가릴 것이 분명하다. 민정수석, 비서실장으로 대통령을 보필한 흔치 않은 경험과 ‘사람 좋아 보인다’는 인상은 그의 자산이다. 하지만 그를 찍지 않은 유권자 60%의 우려도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과연 대통령이 ‘우리 편’과 얼마나 거리를 둘 수 있을까.

경선·대선 과정에서 광팬들의 문자폭탄과 댓글 공세는 ‘디지털 마오이즘(인터넷 집단주의)’ 논란까지 빚었다. 안희정이 문자폭탄에 두 손 들었듯이 전인권 이천수도 불문곡직 ‘적폐’가 됐다. 문 대통령이 취임 초 파격소통으로 관심을 모으지만 국민 통합을 위해 사이버 폭력과는 확실히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내각과 비서진 인선은 새 정부의 성격을 가늠하는 잣대다. 그동안 캠프의 일부 인사들을 보며 우려를 내비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대통령의 초기 인선을 보면 그런 우려를 의식한 인상이 짙다. 청와대의 힘을 빼고 내각의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파격이라면 임종석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의 기용이다. 이들의 행보는 두고두고 관심거리다. 내각 성격도 경제팀 안보팀이 구성되기 전까진 판단을 유보해야 할 것 같다.

사실 대통령의 성공은 지지층과 얼마나 거리를 두느냐가 관건이다. 공적 조직이 아닌, 광장과 가까이 할수록 대다수 국민과 멀어질 수 있다. 촛불시위를 주도한 1500여 단체들이 대선이 끝나자마자 지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최대 지분을 가진 민주노총은 당장 정부와 맞상대하겠다며 노사가 아닌, 노정 교섭을 주문한다.

노동시장 현실을 대통령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노동계 지지를 업고 당선됐더라도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가 경직된 노동구조다. 대통령은 기득권이 된 상층부 7%(민주노총·한국노총)와 나머지 93% 중 누굴 위한 정책을 펴야 할까. 300만 청년백수의 처진 어깨는 어떻게 할 건가. 공공일자리 81만개 공약이 ‘공시족’만 늘릴지도 모른다.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문제를 재벌 탓만 할 수 있겠나. 노동개혁이 빠지면 재벌개혁도 무의미해진다. ‘일자리 보고(寶庫)’인 기업을 뛰게 하고 생산성에 부합하는 임금체계를 정착시킬 의지와 복안이 절실하다.

역사는 ‘우리 편’이 아니라 국민과 국익을 우선시한 지도자에게 후한 평가를 내린다. 유럽의 노동개혁과 노·사·정 대타협은 우파정권이나 경영자가 주도한 게 아니다. 독일 하르츠개혁은 좌파 사민당 정부가, 네덜란드 바세나르협약은 노동계 지도자가 앞장섰다. ‘노동자를 팔아먹는다’는 비난에도 악역을 감수했기에 유럽의 모범생이 될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이 계승하려는 DJ는 국가존망의 위기에서 노동 유연성을 높였고, 노무현은 지지층 반발에도 한·미 FTA와 제주해군기지를 강행했다. 이것이 진짜 계승해야 할 DJ와 노무현의 진면목이 아닐까. 이 점은 보수우파도 인정한다.

‘우리 편’ 덕에 당선됐지만 망치는 것 역시 ‘우리 편’인 경우가 다반사다. 논공행상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면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국민의 실망도 취임 초 환호에 비례한다. ‘우리 편’과 거리를 둘수록 ‘모두의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