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문화살롱] 유커 대신 '동남풍'…달라진 명동 풍경
중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긴 지 두 달. 서울 명동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머리에 히잡을 쓴 여성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두어 명씩 짝을 지어 화장품 가게와 맛집을 순례하는 풍경이 익숙하다. 대부분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이슬람 국가에서 온 여성들이다. 태국과 베트남에서 온 여행객도 많아졌다.

가게 앞에 나온 판촉사원들은 중국어 대신 일본어와 영어, 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방문객의 90%를 차지하던 유커(중국 단체관광객) 자리를 일본 홍콩 동남아 손님들이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명동예술극장 앞 쉼터에 모여앉은 관광객들의 언어도 다양하다.

자구 노력에 동남아·히잡족 북적

관광안내 책자도 바뀌었다.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 일본어 4개 버전에서 태국어, 말레이시아어를 추가한 6개 버전으로 늘었다. 무슬림 관광객을 위한 할랄 음식점과 기도실 안내문까지 등장했다. ‘깃발 부대’만 바라보던 상인들은 지난달 ‘체질을 확 바꾸지 않으면 죽는다’며 관광 활성화 캠페인을 벌였다. 그 덕분에 서비스가 달라지고 바가지요금 시비도 사라졌다. 두 달 전만 하더라도 중국 보복에 ‘미사일급 된서리’를 걱정하던 이들은 “‘유커 바람’ 대신 ‘동남풍’을 타고 거듭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제주에서는 중국 관광객이 줄어든 것보다 더 많은 내국인과 동남아 관광객이 몰려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저께는 제주를 찾은 올해 여행객이 5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보다 이틀 빠른 역대 최단 기록이다. 이 중 말레이시아 관광객이 2만934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만8805명보다 56%나 급증했다. 히잡 바람이 제주까지 분 것이다. 남이섬도 무슬림을 비롯한 동남아 여행객을 위한 인프라를 미리 갖춘 덕분에 ‘유커 쇼크’에 흔들리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다변화 전략에 발벗고 나섰다. 경상북도는 두 곳에 불과한 무슬림 친화 식당을 20여곳으로 늘리면서 이슬람권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경주시는 베트남 등에 관광마케팅단을 파견했다. 베트남 관광객은 지난해 25만여명으로 해마다 50% 이상 늘고 있는 신시장이다.

제주는 중국인 없이 벌써 500만

관광업계의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남은 과제는 여전히 많다. 시장 다변화와 체질 개선에 연계해 숙박·음식·쇼핑·안내·교통 같은 관광 인프라를 확충하는 게 시급하다. 프리미엄 상품 개발과 미식·의료·문화관광 등 부가가치가 높은 콘텐츠 개발로 승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번 기회에 중국 의존도를 확실히 낮추는 ‘넥스트 차이나’ 전략도 확립해야 한다. 그래야 1990년대 ‘마늘 파동’으로 맛을 들인 중국의 보복 습관을 고칠 수 있다.

일본은 2012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때 중국의 관광보복을 한국과 동남아 여행객 유치로 극복했다. 2010년 ‘희토류 전쟁’ 때 시장 다변화로 중국을 굴복시킨 것과 같은 방식이다. 결국 2013년 131만명이던 방일 중국인은 지난해 637만명으로 늘었다.

대만도 중국의 압박에 동남아 비자면제 등 ‘신남향정책(新南向政策)’으로 대응하면서 시장을 오히려 넓혔다. 그 결과 지난해 대만을 찾은 외국인이 1069만명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태국이 초저가 패키지 상품 중심의 ‘제로 달러 투어’를 줄이고 구매력 있는 관광객을 집중 유치해 3000만명을 넘긴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