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전주 한옥마을
600여채의 한옥이 도심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주 한옥마을. 이곳엔 두 개의 시간대가 공존하는 듯하다. 나지막한 담장 사이로 천천히 내려앉는 햇살은 시침(時針), 날렵한 처마 아래 골목을 가로지르는 바람결은 분침(分針) 같다. 수묵담채화의 옛 정취와 젊은 여행객의 활기가 어우러지는 곳….

이곳에 한옥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1930년대다. 도로 신설로 성이 허물어지고 서문 밖 일본인들이 들어와 상권을 잡자 이에 대한 반발로 하나둘 한옥을 지어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서울 북촌이나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등 오래된 한옥마을과 달리 근대적 감각이 가미된 ‘도시형 한옥’이 많은 이유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오목대에 올라 마을을 굽어보면 회색 빌딩과 적산 가옥에 둘러싸인 기와지붕들이 고즈넉하게 펼쳐진다. 그 뒤로 프랑스 신부가 세운 전동성당이 보인다. 한국 최초의 가톨릭 순교자인 윤지충의 순교지 위에 세운 건물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에 비잔틴풍을 접목한 종머리와 본체의 유려한 곡선미가 조화를 이룬다. 영화 ‘약속’ ‘전우치’에 등장해 더 유명해졌다.

태조 이성계 어진을 모신 경기전을 비롯해 선조 때 지어진 전주향교, 소설《혼불》의 작가 최명희를 기리는 최명희문학관, 전통술박물관, 전통한지원, 한방문화센터 등도 인기다. 한옥생활체험관에서는 하룻밤 묵으며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최근에는 한복 체험이 각광받고 있다. 5000~1만원에 한복을 빌려 입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 게 유행이 됐다. 한복 차림 외국인도 많다.

얼마 전 미국 CNN방송이 ‘아시아 문화관광 3대 도시’로 소개한 뒤로 관광객이 더 늘었다. 지난해에만 하루 평균 3만명. 전주 지역 전체로 따지면 연간 1000만명을 넘었다. 시기적으로는 축제의 계절인 5월과 10월, 방학 기간인 7월과 2월에 인파가 몰린다. 교통편이 좋은 데다 전통유적과 축제 등 문화 콘텐츠까지 축적된 결과다. 한옥마을 매출이 하루 평균 3억3800만원, 연간 1234억원에 이른다.

전통에 문화의 옷을 입힌 덕분인지 2년 연속 ‘설 연휴 때 가고 싶은 여행지’ 1위로 꼽혔다. 5월 황금연휴에도 내비게이션 검색 1위에 올랐다. 하지만 한옥마을의 진미를 느끼려면 연휴나 주말은 피하는 게 좋다. 미리 계획을 세우고 전북투어패스나 전주한옥마을권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번 연휴엔 국제영화제까지 겹쳤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