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청년들의 마음 읽는 저출산 대책이어야
51.9%. 2016년 통계청 사회조사에서 나타난 ‘결혼해야 한다’는 응답 비율이다. 2010년 64.7%에 비해 12.8%포인트나 떨어졌다. 20~30대 젊은 세대가 결혼을 미루는 현상은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니다. 작년 혼인건수는 28만건으로 전년 대비 7% 감소했고, 초혼 연령도 남성은 32.8세, 여성은 30.1세로 점차 결혼이 늦어지고 있다. 이런 비혼과 만혼은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저출산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젊은 세대가 가정을 이루거나 아이 낳기를 어려워하는 데 대한 진단은 다양하다. 혹자는 젊은 세대가 배우자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고, 기성세대가 그랬듯이 방 한 칸에서라도 시작하는 소박한 결혼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이 퇴색해가는 세태를 개탄하면서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젊은 세대라고 가족의 소중함을 왜 모르겠는가. 기성세대 눈에는 젊은 세대의 ‘결혼 파업’이 철없는 이기주의로 비칠지 모른다. 그러나, 방 한 칸만 있으면 결혼할 수 있다는 말도, 아이는 낳기만 하면 저절로 큰다는 말도 옛말이 된지 오래다. 직장생활 3~4년간 아껴 가며 월급을 모아도 변변한 전셋집조차 구하기 어렵다. 맞벌이 부부는 일상화한 야근과 회식 속에서 아이 맡길 곳을 찾느라 발을 동동 구르고, 워킹맘은 회사 일과 육아·가사 모두를 잘하는 슈퍼우먼이 돼야 한다. 결혼한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이라는 말은 씁쓸하지만 사실이다. 청년 세대는 일자리와 주거라는 두 가지 결혼 장벽을 마주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준생’ 기간을 거쳐 30대에 첫 직장을 구하고, 어렵게 구한 일자리도 비정규직인 경우가 34.6%에 달하는 현실이다.

일본은 지난해 말 저출산 대책으로 ‘일하는 방식의 개혁’을 꺼내 들었다. 근로시간을 단축해 청년 일자리 기회와 일·가정 양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아래 정규직의 60%에 불과한 비정규직 임금을 80%까지 끌어올린다는 대책이다. 한국도 늦었지만 이런 근본적인 대책을 추진해야 하지 않을까. 육아휴직 수당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성화한 야근과 고용 불안정 속에서 결혼과 출산을 꿈꾸기 어려운 우리 청춘들에게는 기업문화와 근로 관행을 개혁하는 것이 더 와 닿을 것이다.

또 주택 문제는 결혼을 주저하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갈수록 치솟는 전셋값과 계약이 끝나면 언제 이삿짐을 꾸려야 할지 모르는 주거 불안정은 결혼을 늦추게 한다. 결혼해서 자녀를 낳더라도, 가계소득의 상당 부분이 주택자금 상환으로 빠져나간다면 현실적으로 두세 자녀를 가질 엄두를 내기 어렵다. 행복주택과 같은 신혼부부 맞춤형 공공임대주택을 대폭 확대하고 주택자금 대출도 초저금리 장기 상환 방식으로 개편하는 신혼부부 주거지원 패키지를 제시한다면 신혼집 부담 때문에 결혼을 미루는 일은 줄지 않을까.

최근 대통령 직속 제5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출범하고 인구정책개선기획단이 꾸려졌다. 예산을 더 투자하는 식의 땜방질 처방이 아니라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중심이 돼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청년의 고용 안정과 신혼부부 주거사다리 강화를 통해 청년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박주희 <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