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지구촌 공존' 철학으로 생물다양성 시대 주도해야
대부분의 생물자원에는 유전자가 있다. 유전자원을 이용해 의약품 화장품 식품 등을 개발해 커다란 수익을 올리는 바이오산업은 블루오션이다. 조류인플루엔자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쓸 때 유일한 치료약인 ‘타미플루’를 개발해 ‘대박’을 터뜨린 스위스 로슈사는 원료자원인 팔각회향 열매를 제공해 준 중국 남부 및 말레이 지역 주민들에게 원료 구입비를 제외하고 한 푼도 이익을 공유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이런 사례가 다시 생길 수 없다. ‘유전자원 접근 및 이익공유(Access & Benefit-Sharing·ABS)에 관한 나고야 의정서’는 2014년 발효됐다.

90여개국(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오세아니아의 대부분 국가들)이 비준했고, 우리 국회도 지난달 2일 비준동의안을 통과시켰다.
[뉴스의 맥] '지구촌 공존' 철학으로 생물다양성 시대 주도해야
이제는 남의 나라 생물유전자원이나 유전자원 관련 전통지식을 제품 개발에 이용하려면 자원 제공국과 사전 협의한 뒤 개발품의 예상 판매수익 중 일정 부분을 일종의 로열티처럼 지급해야 한다. 인도, 호주, 브라질처럼 매출 또는 순이익의 0.2~3%의 표준 로열티 비율을 정부가 정해 놓고 있는 경우도 있다.

생물자원은 물론 각종 전통지식의 보고인 중국은 의정서 비준과 함께 국내법 제정의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 지난달 말 국무원에서 ABS 조례를 입법예고했다. 그 골자는 중국이 원산지인 유전자원과 이와 관련한 전통지식을 이용해 제품을 개발하는 기업 및 개인에 대해 사전허가 의무를 부여하고, 제품 판매 이익의 0.5~10% 범위에서 이익공유를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환경보호부가 ABS 체제를 총괄해 이익공유금을 생물유전자원보호기금에 귀속시키며, 각 부처에서 소관자원을 관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ABS 의무 위반자에게는 생산 중단 명령, 재산 압수, 불법소득의 3~5배에 달하는 벌금 부과와 함께 국가 차원의 블랙리스트 제도를 수립해 위반자 명단을 관리하고 대중에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ABS 의무를 준수하지 않은 개발품의 중국 내 특허를 불허하는 정책은 시행 중이다.

새로운 사드보복 수단 될까 우려

우리 바이오·제약, 화장품, 식품 분야 기업의 70% 이상이 해외 생물자원을 이용하고 있고 50% 이상은 중국 자원에 의존하고 있다. 이제 중국이 올 하반기에 입법을 완료하고 내년부터 ABS 체제를 본격 시행하면 우리 기업연구소들이 첫 번째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국제 규범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한국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때마침 나고야 의정서라는 합법적 보복 체제가 등장하게 되니 이를 적극 활용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국 생물유전자원을 무단으로 활용해 제품을 개발해 온 한국 기업을 본보기로 삼아 10%에 가까운 이익공유를 요구하는 식으로 우회적인 사드 보복 카드를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 및 업계가 당초 추정한 로열티 피해액인 연간 3500억~5000억원 규모가 훨씬 커질 수도 있다.

우리 관련 기업들은 ABS 의무가 적용되는 제품인지 여부를 일일이 파악해 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특히 중국이 원산지인 생물자원을 제품 연구개발에 사용하는 경우는 중국과의 이익공유 협상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그동안 ‘유전자원의 접근 및 이익공유에 관한 법률’을 입법예고해 외국인의 국내 유전자원 접근 신고제와 이익공유 합의 노력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제는 이런 제도를 적절히 시행해 우리 생물다양성의 보호 체제를 가동하고, 외국 자원에 의존해 온 기업들이 국내 자원 활용으로 방향을 선회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ABS 체제가 출범한 배경에는 타미플루 사례와 같은 ‘생물해적행위’에 대한 개도국들의 공분이 작용한 것이 틀림없지만, 이를 단순히 개도국들이 선진국 제약 및 화장품 회사로부터 금전적 이익을 얻어 내려는 ‘국제레짐(international regime)’쯤으로 인식하는 것은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ABS 체제는 상호배타적으로 여겨져 온 생물자원에 대한 경제적 개발과 생물다양성 보호라는 두 목표를 이익공유 체제로 연결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인간의 이기심과 지속가능성이 조화를 이루고 생물자원 부국과 이용국, 선진국과 개도국, 인간과 자연이 상생의 길로 나아가는 역사적 전환점이 마련된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한 번도 이야기를 안 한 적은 없지만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일을 국제사회가 시작하는 일인 것이다.

'생물해적행위'는 더 이상 어려워

지금 우리 기업과 정부의 ABS 활동은 향후 수십 년간 국가 및 기업 브랜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국은 환경친화적 국제 협조 정책을 무시하는 국가로 전락해서는 안 되고, 한국 기업들이 ‘바이오 약탈자’라는 공공의 적이 돼서도 안 된다. 우리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협상 중인 에콰도르가 이미 자국의 5대 생물해적국가로 미국 독일 네덜란드 호주와 함께 한국을 지목한 상황이다. 새로운 국제 협력 해법을 찾아 낸 인류가 가장 주시할 대상이 통상대국인 한국이고 그 수출 기업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커다란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이런 도전을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ABS 체제를 통해 국제 협력 모델을 정착시키고 우리 환경 보호도 증진시키며 생물다양성 관련 연구도 심화시켜 나가야 한다. 정부는 이런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접근에 적합한 ABS 대응전략을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하며, ABS 관련 전문가를 양성하는 사업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바이오기업들도 이익공유 의무가 당장은 기업비용으로 계상될지라도 글로벌 협력 및 친환경 제품 홍보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익공유'는 홍보기회 될 수도

미국 미용회사인 ‘아베다’가 구사한 지혜는 본받을 만하다. 아베다는 호주 토착 지역사회 그룹과 향수제품의 원료인 샌들우드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t당 추가적으로 500달러의 로열티를 이익공유 명목으로 지급했다. 기업이 지역공동체에 이익을 환원함으로써 환경적 책임을 지며 미용제품의 원자재 조달이 지역공동체 복지와 직결된다는 인식을 제품의 이미지로 심었다. 이익공유 체제를 단순히 기업의 생산비용 증가 요소로 간주하지 않고 제품 차별화와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 사례다.

우리 기업들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국내적 개념이 이제는 기업의 생물다양성 책임이라는 전 지구적 개념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글로벌 시대에 기업이 이익을 올리는 무대는 글로벌 시장이다. 지속가능한 생물다양성의 유지 없이 글로벌 시장이 존속할 수 없는 시대에 바이오기업과 정부가 함께 추구할 공동체 가치의 방향을 재설정할 때다.

최원목 <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 ABS포럼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