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언론의 선동능력과 예측 무능력
골프장들은 다 망할 것 같았다. 그러나 아닌 모양이다. 식당들도 다 망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전국 골프장들의 작년 영업이익률은 12.1%로 전년에 비해 0.8%포인트 높아졌다는 것이 한국레저산업연구소의 분석이다. 대중골프장의 영업이익률은 전년의 28.5%보다 더 높아져 29.2%라고 하니 이런 장사도 없다. 접대골프가 많은 회원제 골프장들은 -1.7%의 영업이익률로 전년의 -0.5%보다 나빠졌다고 한다. 그러나 소위 김영란법과 함께 골프장들이 괴멸적 타격을 입을 것이라던 소동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고급식당도 다를 것이 없다. 일부 접대용 고급식당은 대중식당으로 간판을 갈아 끼웠지만 주말의 고급식당들은 여전히 예약조차 어렵다. 박근혜가 나라 경제도 망가뜨려 놓았다던 연말을 지나 선거전이 한창인 지금은 더욱 그렇다. 언론들은 과연 김영란법에 무슨 짓을 한 것일까.

김영란법은 결코 좋은 법이라고 할 수 없다.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사 기자들을 단속 대상에 포함시킨 점이나, 근거도 없이 3만, 5만, 10만원의 금액 기준을 제안하면서 혼란을 부채질한 것, 강의료 등 지식의 대가를 사실상 뇌물로 판단한 점, 민원 알선 등에서 국회의원을 제외한 것 등은 있을 수 없는 입법 실수였다. 그러나 김영란법이 내수경기를 파괴할 것이라는 따위의 저주로 일관한 언론 보도는 작위적으로 부풀려졌으며, 심하게 말하면 자기가 골프장에 안 가면 골프장이 문을 닫는다고 생각하는 한심한 보도들에 불과했다.

사실 언론들의 단말마적 소동은 지난해 4분기께 터져나온 경기 급랭 보도들이 더했다. 박근혜 탄핵 열풍과 함께 4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는 다급한 경보가 쏟아졌고 언론보도에 겁먹은 연구단체들도 경쟁적으로 4분기 성장 전망을 낮춰 잡았다. 한국은행조차 그랬고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예외는 아니었다. KDI는 4분기의 마지막 달인 12월 들어 0% 성장을 예측하는 하향 수정 전망을 발표했다. 새해 경제 전망을 비관적으로 수정할 수밖에 없다며 호들갑을 떨던 모 민간연구소장의 얼굴도 새삼 떠올리게 된다.

결국 4분기 경제는 0.5%의 꽤 좋은 성적표를 제출했다. 박근혜 4년의 경제 성장도 그렇다. 언론들은 극단적 비관론을 부추긴 것이 미안했는지 4년차 2.8%의 비교적 무난한 성적표에 대해서도 마치 고영태 녹취록처럼 외면하고 있다. 대신 ‘3만달러 달성 올해도 실패’라는 기발한 제목을 찾아냈다. 어떻든 박근혜 4년은 당초의 우려 및 지난해 하반기의 극단적 비관론과는 달리 연평균 2.96%라는 좋은 수치를 기록하게 됐다. 더구나 세계 평균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성장률이 낮아지는 중에 이뤄낸 좋은 성적표였다. 세월이 지나고 나면 박근혜 4년 경제 성적표를 좋았던 추억의 하나로 회고할 것이다.

연말정산 소동은 회고하기도 부끄러운 일이 됐다. 세금을 먼저 떼고 나중에 돌려받는 원숭이 계산을 오히려 지지하는 희한한 보도를 언론들은 집단적으로 그리고 광적인 집중력으로 해냈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 한국 언론의 브렉시트 보도로는 영국은 이미 망했어야 하지만 더 좋아지고 있다.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모르지만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을 과장되게 실어나르던 언론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보고 있다. 중국의 대(對)한국 수입의 90% 이상이 중간재이기 때문에 곧 보복의 한계에 직면할 것이라는 논리적 설명 따위는 한국 기자들의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세금이 잘 걷히면 ‘쥐어짜기 세정’이요, 기업들의 순이익이 늘어나면 ‘불황형 흑자’였다. 하이에나처럼 몰려다니면서 근거 없는 풍문을 실어나르는 데는 이골이 났지만 사실을 추적하고 논리를 구축하는 일에는 문외한이 따로 없다. 긴말이 필요 없이 언론은 소통의 도구요 지식의 매개자다. 당연히 언론의 수준이 정치와 민도의 높낮이와 너비를 결정한다. 언론은 물론 한국인의 반응기제 위에서만 기능한다. 한국인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정규재 논설고문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