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알고, 얼굴도 알지만, 그 마음속은 모른다(知人知面不知心).

[류재윤의 '중국과 中國' (17) 信(정보)-3] 정보원부터 검증하자
필자는 25년 전부터 중국 중앙 및 지방정부를 상대로 투자협상을 했다. 개인적으로 늘 흥분과 불안으로 지낸 격동의 시기였다. 흥분한 이유는 드디어 중국에서, 긴장감 넘치는 협상 과정을 체험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반면 늘 불안했고 외로웠다. 개인적으로도 당시에는 중국을 잘 모를뿐더러 주위에 이렇다 할 만한 멘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만난 중국인 스승이 있었다. 당시 중앙정부 주무부서의 국장이었는데, 그분의 충고는 큰 깨달음을 줬다. “네가 앞으로 중국에서 사람을 만나거든,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봐야 한다!” 누군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곧이곧대로 듣지 말라는 것이다. 그 사람이 성실한 사람인지, 심지어 자신이 구두 또는 명함으로 소개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라는 것이다. 말에 책임을 지려는 사람인지, 더 나아가 그런 말을 할 만한 위치에 있는지를 살펴보고 판단하라는 충고였다.

곧이곧대로 듣는 건 금물

[류재윤의 '중국과 中國' (17) 信(정보)-3] 정보원부터 검증하자
일언이 중천금(一言九鼎)이라는 식의 중국인의 말을 그대로 믿기 전에, “그가 누구인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대부분 “내 앞에 앉아서 침을 튀기며 능력을 자랑하는 중국인이 정말 귀인(貴人)이었으면 좋겠다. 그가 해주는 말들이 정말 사실이고, 그만한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이 생긴다. 중국에서 사람 사귀기가 어려워 보이고, 또 해야 할 일은 막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사람’과 그의 ‘약속’은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미혹돼 맹목적으로 좇는 것은 열정이 아니다. 맹종이며 어리석음이며, 회사는 어느새 돌이킬 수 없는 지점(point of no return)에 이른다.

저명한 인류학자인 헤이르트 호프스테더는 이(異)문화 간에 소통할 때 액면 그대로 해석하려는 어리석음에 대해 “정보는 낱말 자체가 아니라, 낱말이 문화적 틀에 맞춰질 때 생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판단이 들어간 표현은 특정 집단에 관한 정보보다 정보를 주는 사람의 가치체계에 관한 정보를 더 많이 함유하고 있다”며 누가 무슨 말을 할 때 그의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전제로 발언을 이해하고 분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행간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같은 문화권’ 또는 ‘나도 중국어를 좀 할 줄 알아!’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위험천만한 자만이다.

예를 들면, 중국의 일종의 문화사회적 시스템(?)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규정을 확인하고 그대로 했는데, 오히려 규정대로 집행되지 않는 황당한 경우에 직면한다. 중국사람들은 규칙(규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바로 顯規則(현규칙·드러난 규칙)과 潛規則(잠규칙·안 드러난 규칙)이다. 전자는 우리가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규정이다. 후자는 전자에 비해 대부분 명문화되지 않은 규칙으로서, 일종의 내규 내지는 지침 또는 관례다. 현규칙이 군함이라면, 잠규칙은 잠수함이다. 길거리의 신호등이 현규칙이라면, 교통순경의 수신호는 잠규칙이다. 수신호는 절대 기계적이지 않고, 그때그때 변화는 상황에 근거한다. 잠규칙은 눈에 안 띄지만 (교통경찰의 수신호처럼, 잠수함처럼 강력하므로) 모른다면 그만큼 더 위험하다. 잠규칙(교통경찰의 수신호)은 현규칙(신호등)에 앞선다. 그래서 더 중요하고, 그러기에 모르면 더욱 위험하다. 중국 문화를 감안하지 않고, 투자 또는 주요 의사결정을 할 때 소위 ‘글로벌 룰’과 ‘분석 없는 경험’만을 의지해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드러나지 않은 규칙이 더 중요

硬規則(경규칙·딱딱한 규칙)과 軟規則(연규칙·부드러운 규칙)도 있다. 현규칙과 잠규칙을 불문하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경규칙이고, 협상과 설득을 통해 조정될 수 있는 것은 연규칙이다. 무조건 규정이라고 해서, 무조건 황색의 중앙선이라고 지레 판단하면 안 된다. 하얀색의 점선, 즉 차로 변경선인 경우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정보를 취합한 후에는 분석, 축적해서 자산화해야 한다. 기업 및 개인에게도 해당된다. 어렵다고 모른 척해서 ‘방안의 코끼리’를 만들면 안 된다. 정보를 마주칠 때마다, 무조건 믿으려는 유혹을 억제하고, 귀찮고 어렵더라도 늘 검증하자. 조직이든 개인이든 이런 노력을 견지하자. 몽테뉴는 지식은 남들(외부)로부터 얻을 수 있지만, 지혜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늘 검증하고 또 검증하는 자세로 임한다면, 지식(정보)을 얻어가는 과정 속에서 ‘중국을 읽어내는 지혜’가 덤으로 생길 것임을 확신한다.

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