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탈(脫) 스마트폰 상태로 보낸 하루
회의준비를 하던 중 휴대폰을 집어 들다 그만 바닥에 떨어뜨렸다. 아차 싶었는데 휴대폰 화면에 검은 줄이 가더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먹통이 되고 말았다. 중요한 회의 참석을 앞두고 있던 터라 먹통을 고칠 여력이 되지 않았고, 회의가 끝나고 나니 늦은 저녁이 돼 수리를 맡길 수 없는 시간이었다. 본의 아니게 강제적 탈(脫) 스마트폰 상태로 만 하루를 보내게 된 것이다.

첫날은 중요한 전화가 걸려올까 하는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을 뿐 그럭저럭 불편함이 없었다. 문제는 다음날 아침부터였다. 아침에 일어나 뉴스와 검색어, 스코어 등을 훑어보는 루틴을 하지 못하니 도저히 잠이 깨지 않는 기분이었다.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확인하고 외투를 챙겨왔는데 정확한 기온을 알지 못하니 왠지 출근을 못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궁여지책으로 거실 창을 활짝 열고 현재의 온도를 예측했다. 뉴스는 회사에 출근해 PC를 이용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휴대폰 수리점부터 검색해 마침내 점심 무렵 스마트폰 세상 안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20시간 가까이 확인하지 못했던 45개의 메신저 톡과 9개의 메시지, 2통의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자 마음이 평온해졌다.

없이 지내보니 알겠다. 스마트폰에 대한 의존, 이 또한 하나의 중독이란 것을. 하루 동안 불안, 초조 등의 금단현상에 시달리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었으나, 반대로 그간 잠시 잊고 살았던 감각들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경험 역시 했다.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은 스케줄표에 기대지 않고 기억을 되살려 오늘의 일정을 떠올리느라 뇌를 활성화시켜야 했고, 한결 포근해진 기온을 기민하게 예측한 오감 덕분에 오히려 날씨에 맞는 옷차림을 하고 나올 수 있었다. 의존해온 하나를 끊자 새로운 살이 돋아날 여유 공간이 생긴 기분이었다.

무엇을 얻기 위해선 반드시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버려야 채워진다고, 오랫동안 기대어 온 의지해 온 것을 끝낼 때 오히려 새로운 세상이 나를 채우기도 하는 것 같다.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고,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간 것을 찬찬히 보게 된다. 정보를 받는 수동적 입장에서, 능동적인 사고방식으로의 전환이 가능해진다. 마치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운전을 하면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정작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편리에 대한 지나친 의지로 인해 어쩌면 정작 중요한 본질을 잃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몸비(smombie)라는 신조어가 있다. 스마트폰(smart phone)과 좀비(zombie)의 합성어로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걷는 사람을 뜻한다. 스몸비는 더 이상 길 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듯하다. 스키장, 자전거도로, 지하철, 심지어 산행로에도 스몸비로 크고 작은 사고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산에 올라가고자 했던 애초의 목적과 의도를 우리는 잃어버린 것일까. 그렇다고 촌스럽게 문명의 이기(利器)를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편리를 이용하면서도, 그것에 길들여지고 싶지 않을 뿐이다. 미련과 불안함 때문에 끝내야 하는 것을 끝내지 못하고, 끊어야 하는 것을 끊지 못한다. 본질에 충실하게 정리할 것들을 정리해 빈 곳과 여유를 만들어 놓아야겠다. 그래야 새봄에 새로운 것들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이윤정 < 영화전문마케터·퍼스트룩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