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중국 인문기행' (14) 허베이(河北)] 백이·숙제의 절개를 품은 땅
허베이는 우리의 시선으로 볼 때 경기(京畿)라고 해도 좋다. 최고 권력자인 황제(皇帝)가 머무는 곳이 도성(都城), 그 외곽에 해당하는 곳을 경기라고 한 맥락에서 보면 그렇다. 허베이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도인 베이징(北京)의 바깥을 감싸 안은 땅이다. 지정학적 위치라는 점에서도 눈여겨볼 곳이다. 우선 서쪽의 황토 고원, 동북의 만주 평원, 서북으로는 몽골 고원과 접점을 이룬다. 따라서 600년 전 명(明)이 들어설 무렵에도 중국을 한때 석권했던 몽골족의 침략 위협이 사라지지 않았던 곳이다. 허베이를 원래 일컫는 한자는 燕(연)과 趙(조)다. 춘추, 또는 전국시대 때 이곳에 들어섰던 나라 이름에서 유래했다. 아울러 지금의 베이징 일대를 일컬었던 유주(幽州)라는 이름도 보인다. 수도 외곽이라는 점에서 畿(기)도 쓴다. 지금의 허베이 지역 자동차 번호판에 쓰는 冀(기)라는 글자도 원래는 이곳 지명이었다. 인구는 2014년 약 7300만명.
베이징 외곽 허베이성에 있는 만리장성 모습. 허베이는 베이징의 외곽을 감싸면서 서북과 동북으로는 몽골, 만주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베이징 외곽 허베이성에 있는 만리장성 모습. 허베이는 베이징의 외곽을 감싸면서 서북과 동북으로는 몽골, 만주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단과 형가의 '역수의 비가'

중국인들은 곧잘 이곳 인문을 慷慨悲歌(강개비가)라고 적는다. 제법 오래전부터다. 곡절은 여러 갈래지만, 허베이에 있는 역수(易水)가 직접적인 원인 제공처다. 이 조그만 하천에서 2200여년 전 벌어진 심상찮은 풍경이 하나 있었다. 당시 최고 권력자는 중국의 판도를 처음 통일하려 했던 진시황(秦始皇)이었다. 그는 나중에 도량형(度量衡)과 문자(文字) 등을 표준화한 통일 위업의 실현자였으나 속내는 폭군에 가까웠다. 당시 허베이에 있던 나라는 연(燕)이었다. 연나라의 태자 단(丹)은 진시황 살해에 나섰다.

형가(荊軻)라고 하는 자객을 진시황에게 보내는 정경이었다고 했다. 하얀 옷을 입은 연나라 태자 단과 휘하의 신료들이 역수의 정자에 모였다. 자객인 형가를 떠나보내는 의식이었다. 자객 형가는 “바람이 소슬하게 부니 역수의 물이 차갑다. 장사는 한 번 가서 돌아오지 않으리라(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라고 노래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가 전하는 내용이다. 암살과 테러가 바탕이기는 하지만 폭력에 맞서는 사람의 의기(義氣)를 따질 때 중국인들이 꼽는 최고의 명장면이다. 이를 연출한 사람들이 바로 당시의 연나라, 지금의 허베이 사람들이다. 이들의 정서가 慷慨(강개)였을 테고, 죽음을 걸고 나서는 당시의 읊조림이 悲歌(비가)에 해당할 것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허베이의 인문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들은 상국인 은(殷)을 없앤 주(周) 왕실에 타협하지 않은 채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따먹으며 연명하다가 죽은 의리와 명분, 절개의 상징이다.

조자룡·장비의 고향

우리에게도 아주 익숙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첫 대목에도 이곳이 등장한다. 유비(劉備)와 관우(關羽), 장비(張飛)가 복숭아꽃 피는 도원(桃園)에서 “태어난 날은 달라도 죽는 날은 같을 것”이라며 의형제의 연을 맺는 장면 말이다. 그 유비의 집이 있었다는 곳이 오늘날 허베이 줘저우(州)다. 의형제 중 막내였던 다혈질 사내 장비의 고향도 같다. 이곳에서는 또 오대십국(五代十國)의 난세에 불어닥친 풍운을 잠재운 뒤 북송(北宋)이라는 통일왕조를 세운 조광윤(趙匡胤)도 출생했다.

주군의 아들을 지키려 적진으로 뛰어들어가는 등 아주 빼어난 무공(武功)으로 삼국시대 시공에서 맹활약한 조운(趙雲), 즉 조자룡(趙子龍)도 허베이 정딩(正定)현 출신이다. 조자룡의 고향은 지금 중국 최고 권력자인 시진핑(習近平)이 관료로서 처음 활동한 임지여서 최근 다시 유명해졌다.

중국 왕조사에서 바른말 잘하기로 가장 유명한 위징(魏徵)도 허베이 사람이다.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이 그의 간언이 하도 지긋지긋해 “당장 죽여 버려!”라고 할 정도였던 인물. 그러나 이세민은 위징이 죽자 “나를 비추는 거울을 잃었다”고 통곡했다고 한다. 중국 문단에서 유학의 정통(正統)을 내세우며 강력한 문체 반정(反正)을 시도했던 당나라 때의 한유(韓愈)도 허베이가 출생지다. 그는 중국 역대 문단에서 가장 강골(强骨)로 꼽힌다. 현대 인물로는 중국 공산당 창시자인 리다자오(李大釗)가 유명하다.

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