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해운·조선·금융은 하나다
한진해운 사태 이후 정부는 해운산업의 재도약 발판을 만들기 위해 작년 10월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수립했다. 이 방안이 실효성 있게 추진되기 위해서는 금융과 해운, 조선정책 간에 실질적인 연계를 이룰 수 있도록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작년부터 부채비율이 높고, 수익성이 떨어진 해운 및 조선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보냈을 때 지역 경제가 위축되고 실업이 증가했다. 그뿐만 아니라 물류대란으로 인한 무역대국의 신인도 하락, 환적 물동량 하락으로 인한 부산항의 중심항만으로서의 지위 위협, 전후방 관련 산업의 부정적 파급효과가 크게 발생했다.

이는 해운산업이 수많은 수출입 화주들의 세계수송 인프라로서, 공공재 성격이 크기 때문이다. 국적 선대(船隊)가 없으면 우리나라 중소화주들은 외국 선사들이 제시하는 높은 운임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운임 부담은 곧 수출업체의 가격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지는데 특히 앞으로 경기가 회복해 해상운임이 오를 때 국내 화주의 운임 부담 피해가 더 커질 우려가 있다.

해운산업의 특수성은 주로 금융과 관련된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거의 모든 선주는 선박을 건조할 때 조선소의 신용으로 차입한 선박금융을 이용한다. 선박을 건조해 운영하는 선사는 선박금융부 선박을 인수하게 되며 선가의 60~70%에 달하는 선박금융이라는 차입금을 떠안은 채 선박을 운영한다. 이런 의미에서 해운은 곧 금융인 것이다.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에 포함돼 있는 주요 대책 중 한국선박해양주식회사를 이용한 선사 유동성 지원, 캠코펀드의 선박매입 한도 증액, 선박신조펀드, 글로벌 해양펀드 등 모두가 금융대책이다. 따라서 금융의 시각이 해운산업을 공공재가 아닌 경기 변동 리스크가 있는 산업으로 보기 시작하면 아무리 좋은 취지의 대책도 해운산업 경쟁력을 강화해서 우리 수출기업의 수송 인프라를 재구축하자는 정책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당장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건조해 원양 컨테이너선사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선박 신조펀드를 사용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부채비율 400% 미만 업체만 사용이 가능하도록 가이드라인이 붙어 있다. 현대상선 등도 몇 척만 건조하면 이 부채비율이 높아져 사용이 어려울 것이고 많은 해운업체가 아예 신청 대상에 들지도 못한다. 금융의 시각에서 부실채권화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 가이드라인은 될지 몰라도 해운 경쟁력 강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은 아닌 것이다.

또 해운정책은 조선정책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해운경쟁력 강화를 위한 선박신조펀드 등 선박금융은 조선산업의 일감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의 조선정책은 해운산업과 괴리된 채 수출산업 정책만 추진해 왔다. 일본이 높은 인건비에도 불구하고 아직 조선산업이 건재한 이유는 자국 선사들을 위한 맞춤형 내수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국내 선사들이 소유하고 있는 건화물선은 약 400척, 2000만t으로 전체 선박의 66%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부분 한국과 중국에서 건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당국은 지난해 10월 건화물선 건조 부문을 과감하게 축소하겠다고 구조조정 방향을 발표했다. 건화물선 건조의 부가가치와 가격경쟁력이 낮다는 이유로 해운과 조선의 큰 연계고리가 상실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 조선소에서는 고효율의 건화물선을 개발해 일본 선사에 공급하고 있다. 이제 우리의 조선정책도 해운과 연계된 내수정책을 펼 때다.

정부의 해운·조선 구조조정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정된 자원으로 산업이 모두 상생할 수 있도록 해운-조선-금융 정책을 연계해야 한다. 따라서 행정조직상 해운, 조선, 선박금융 행정을 한곳에 묶어 정책연계 컨트롤타워를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 이를 통해 조선대국, 무역대국, 해운강국을 서로 받쳐주는 짜임새 있는 해운·조선 국가정책을 펴 나간다면 해운·조선산업이 미래에도 성장동력을 이끌 국가 핵심 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양창호 <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