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0일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아베 총리는 이 자리에서 70만개의 일자리와 4500억달러 규모의 신시장을 미국에 창출하는 투자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물론 트럼프의 일본 배싱(때리기) 무마용이다. 트럼프는 당선 후 줄곧 일본의 과도한 무역 흑자를 비판했고 도요타자동차에도 압박을 가했다. TPP 탈퇴도 선언했다. 아베가 ‘조공외교’라는 비판까지 감수하면서 다급히 트럼프를 찾아가는 건 30년 전 불붙었던 미·일 반도체 분쟁이나 자동차 분쟁의 재연을 미리 막자는 뜻에서일 것이다. TPP를 대체할 광역 미·일 FTA를 만들겠다는 내심도 엿보인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건 며칠 전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도요타 사장과 아베의 2시간 넘는 회담이다. 아베는 도요타에도 미국공장 건설을 주문했을 것이다. 도요타는 이에 앞서 5년간 미국에 100억달러 이상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별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트럼프는 이미 “도요타가 멕시코에 미국 수출용 코롤라 모델을 생산하는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는데 절대 안 된다. 미국에 공장을 지어라”라고 했다. 도요타만이 아니다. 포드와 크라이슬러 캐리어 아마존 등 수많은 다국적 기업이 트럼프의 압박(?)에 못 이겨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긴다는 상황이다. 이들이 생산공장을 옮기면서 수많은 부품업체들은 연쇄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 글로벌 가치사슬의 이동이다. 그런 정치적 압박은 한국 부품업체에까지 밀려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금의 경제를 “다국적 기업이 존망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시대”라며 “트럼프는 기업을 복종시키고 싶어 야단이다. 기업들은 트럼프의 분노를 사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평했다. 정부가 투자를 하고 산업을 키운다는 발상이 미국에서 횡행한다. 저개발 국가에서 쓰는 방식이 자유시장의 아이콘 미국에서 버젓이 쓰이는 것이다. 일부에선 트럼프가 70년대식 사고방식에 빠져 있다고 분석한다. 덩달아 아베 총리도 직접 기업들을 지휘하려 한다.

기업은 인류의 역사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며 유산이다. 기업들은 인류를 빈곤에서 구했고 문명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우리는 그것을 글로벌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정치권력은 친기업이든 반기업이든 기업을 직접 지휘하려고 애쓰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수많은 대선 주자가 4차 산업혁명을 말하고 성장동력을 얘기하지만 정작 기업들은 수많은 규제에 둘러싸여 있다. 20대 국회 개원 이후 9개월 사이에 의원입법만 4700건이 넘는다. 19대 때의 1.5배다. 경제 활동에 국가의 간섭과 규제만 늘어나고 있다. 소위 우파 국가주의도 ‘경제할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