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칼럼] 22조원으로 일자리 100만개 만든다?
대선 정국이 돌아왔다. 이번 대선 일정은 촉박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탄핵이 인용되면 60일 안에 선거를 치러야 하니, 각 정당은 서둘러 후보를 확정지어야 한다. 선거운동기간이 단축되는 만큼 후보들도 공약을 차분히 다듬거나 옥석을 가릴 여유가 없다.

더욱이 선거가 끝나면 당선인은 바로 대통령에 취임해야 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등을 거치며 국정 현황을 파악하는 과정은 생략된다. 취임하기 전에 국정의 틀을 짜고 공약을 선별해 국정과제로 전환하는 정지작업도 실종될 전망이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대통령 후보들의 정책기조와 공약에 대한 진지한 숙의와 엄밀한 검증이 긴요해졌다. 하지만 언론의 주 무대는 여전히 특검과 탄핵에 머물러 있고, 백가쟁명처럼 쏟아지는 공약에 대한 공론의 장은 허술하다. 두 가지 사례만 살펴보자.

어느 대선주자는 지난주 “4대강 예산 22조원만 해도 연봉 2200만원짜리 일자리 100만개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랫동안 일자리 창출 방안을 준비해왔고, 또 수백 명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유력 후보의 견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나랏돈으로 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진부하고 어설픈 발상에 대해선 따로 왈가왈부하지 않겠다.

농식품부와 환경부의 계속사업을 빼면 15조원 남짓 투입된 ‘4대강 살리기’는 2009년부터 4년에 걸쳐 추진된 일회성 사업이었다. 이에 비해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은 해마다 돈이 드는 계속성 사업이다. 사무실 임차료 등을 빼고 인건비만 따져도 그만한 연봉의 일자리 100만개를 유지하려면 매년 22조원이 소요된다. 할인율 연 2%를 적용해 그처럼 지속적인 현금흐름의 현재가치를 환산하면 무려 1100조원에 이른다.

대통령 후보로 나서려면 일시적 투자비와 세세연년(歲歲年年) 지출해야 하는 경직성 경상비의 차이를 깨치고 이제라도 구상을 바로잡기 바란다. 주장한 것처럼 22조원을 들인다면 공공부문 일자리는 100만개가 아니라 2만개밖에 만들 수 없다. 지금의 엉성한 프레임을 차용하더라도 일부 중앙부처를 애꿎게 세종시로 옮기느라 쏟아부은 혈세 22조원이야말로 일자리 창출에 썼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여러 주자가 관심을 기울인 기본소득제는 또 어떤가. 한 후보는 아동, 청소년, 청년, 노인, 농어민과 장애인 등 2800만명에게 매년 13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천문학적인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그가 제시한 과격한 방안들은 꼬치꼬치 따질 실익이 없으니 논외로 하자.

널리 퍼져 있는 오해와 달리 기본소득제는 좌파 의제가 아니라 작은 정부, 다양성과 선택을 중시하는 우파 기조와 맞닿아 있다. 방만한 복지프로그램을 줄여 낭비를 없애고, 복지 수혜 때문에 위축될 수 있는 근로·투자·저축의욕을 북돋우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본소득제는 재산·소득·노동과 무관하게 모두에게 최소한의 생활은 보장해야 하므로 복지 수준이 꽤 높은 선진국이라야만 논의할 가치가 있다.

그런데 최근 제안된 공약은 이름만 기본소득제일 뿐이다. 기존 복지프로그램의 구조조정에 관한 언급은 없고, 추가로 더 베풀겠다는 내용만 담고 있다. 게다가 핵심 근로·투자계층인 30~64세 중장년층은 대상에서 빠졌다. 선진국에 못 미치는 우리 복지수준에 비춰 기본소득제의 효과와 실현 가능성이 낮은 문제점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다보스포럼의 주제는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이었다. 특히 지난해 영국 국민투표와 미국 대선을 거치며 세를 불리고 있는 포퓰리즘이 경계 대상으로 지목됐다. 남의 일이 아니다. 다가온 대선에선 표심을 현혹하는 후보와 정책을 눈 부릅뜨고 걸러내야 한다.

박재완 < 성균관대 교수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