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그냥 마음 편하게 나누시지요
연말 연초에는 으레 신문, 방송을 통해 이웃돕기 성금을 내주신 분들을 소개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금일봉을 전달해주신 분을 비롯해 수백만원에서 수백억원까지의 금액이나 금품을 전달해주신 분들이 그 금액 크기 순서로 소개된다. 대부분 고위 공직자나 유명 단체, 기업 명의로 기부가 이뤄지는데 기부 금액을 보면 마치 해당 기부 단체나 기업의 규모 서열을 보는 것 같다. 얼마인지 모르는 금일봉의 기부자가 수백억원의 기부자보다 먼저 소개된다는 점이 재미있다.

기부라는 개념은 자선이라는 개념으로부터 도출된다. 자선을 뜻하는 영어 ‘charity’와 ‘philanthropy’ 모두 나눔의 행위를 의미하는데 결국 자선이란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그리고 사회적 약자 및 소외계층을 위해 시간과 돈을 자발적으로 기부하고 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기부 또는 자선이라고 하면 흔히 사회적 직위나 신분이 높은 사람이 실천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오늘날 사회에서 사회적 직위나 신분의 높낮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가진 사람과 안 가진 사람을 불문하고 평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모순은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간 빈부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데 있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각종 사회보장제도가 도입되고 그 제도의 시행에 필요한 자금을 만들기 위해 세금이 부과되기도 한다. 하지만 있는 사람들은 그 세금을 피하기 위해 비과세상품 또는 감세상품을 고안해 내고 때론 탈세를 하기도 하고, 정부는 또다시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또 다른 방안을 강구하는 피곤한 머리 싸움을 계속하게 된다. 언제까지 이런 행태가 반복돼야 할까.

기부와 자선이라는 의미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돕는 것이라면 그런 행위는 더 이상 어느 특정 집단이나 계층이 의무로써 행해야 하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저마다 가진 것을 나누는 행위가 돼야 한다. 남을 돕는다는 말보다 남과 나눈다는 말이 더 아름답다. 주역에서는 손상익하(損上益下) 즉 위의 것을 덜어서 아래에 이익을 주면 위와 아래에 모두 이익이 된다고 한다.

나누면 받는 사람도 즐겁지만 주는 사람도 더 행복해진다. 나누면서 살면 내 삶이 행복해진다. 그것은 기쁨이며 즐거움이다. 더 이상 특정 계층의 의무라고 생각하지 말고 또는 의무감에서 체면치레로 보여주는 나눔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스스로의 기쁨을 위해 기꺼이 그냥 나누는 사회, 있는 사람은 조금 덜 있는 사람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몫을 나누고 조금 부족한 사람은 또 그보다 더 부족한 사람을 위해 조금씩 나누는 사회, 그것이 진정 사람과 사람이 서로 도우면서 사는 아름다운 사회라고 생각한다.

박상일 < 법무법인 충정 대표변호사 sipark@hmplaw.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