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회계제도 개혁, 갑을관계부터 바꾸자
지난해 5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2016세계경쟁력평가보고서에서 한국은 전체로는 조사 대상 61개국 중 29위(전년도 25위)였다. 그러나 세부내역 중 회계 및 감사부문에서는 61위로 꼴찌(전년도 60위)였다. 부끄럽고 통탄할 상황이다. 회계기준원을 포함한 규제당국은 2011년부터 국제회계기준(IFRS)을 전면도입하면 바로 회계선진국이 되는 것처럼 홍보해 왔다. 우리나라 회계주권을 포기하면서 5년 동안 회계기준의 번역과 시행 전파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왔으나 결과는 이처럼 참담했다.

지난해 7월 금융감독원의 상장법인 외부감사의견 통계자료를 보면 2015년도의 경우 주권상장법인 전체의 감사의견 분포에서 적정의견이 99.4%(전년도는 99.1%)이고, 한정의견과 의견거절, 부적정의견 등 적정의견이 아닌 경우가 1% 미만이었다. 외부감사는 경영진의 성적표(재무제표)를 주주 등 외부이용자가 신뢰할 수 있도록 독립된 공인회계사가 검증하는 제도적 장치인데, 감사인들의 법적 책임을 고려한 소신 있는 의견표명이 아쉽다.

작년부터 건설업과 조선해양산업 등 수주산업의 분식회계 내지 회계부정 문제가 각종 언론에 대서특필돼 사회 공분을 사고 있다.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팔을 걷어붙이고 작년 8월 회계제도개혁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중립적인 회계학회에 용역을 발주했으며 공청회를 10월27일 열었다. 분야별로 논란이 많지만, 가장 핵심적인 감사분과의 감사인선임제도와 관련해서는 아직도 현황 인식이 안이해 근본적인 개혁안이라기에는 매우 미흡하다. 제시된 개선안들은 모두 현행의 문제 많은 자유선임제(자유수임제는 감사인의 수임이 자유스럽지 않으므로 잘못된 용어)를 전제로 하고 조금씩 변형 절충한 것이다.

감사계약제도에는 자유선임제와 지정제가 있다. 자유선임제는 일반용역처럼 기업이 감사인을 자유롭게 선임해 감사계약을 체결하는 제도다. 지정제는 외부감사의 공공재적 성격(감사비용은 기업이 부담하지만 감사보고서는 일반인이 무료로 이용)을 고려해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가 외부감사인을 지정해 기업과 감사인 간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는 제도다.

한국에서는 과거 정부배정제를 채택했지만 사적자치원칙과 감사인 간 경쟁을 통한 전문성 제고라는 명분으로 1983년부터 100% 자유선임제로 바뀌었다(예외로 분식회계 기업과 상장예정기업 등 일부 예외). 그러나 한국 특유의 소유와 경영의 미분리 체제 아래에서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시절 선진국을 따라 도입한 상법상 기업지배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선진국과 달리 사외이사나 감사위원회 등 내부감시기구가 연고채용으로 유명무실한 상황에서 자유선임제 시장은 실패했다.

지정제에도 ‘전면지정제’와 ‘상장법인지정제’ 두 방안이 있다. 전면지정제는 비상장법인을 포함한 모든 법정 외부감사에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에 위탁)가 100% 지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상장법인지정제는 상장법인과 금융회사만 금융위가 외부감사인을 지정하되 비상장법인은 자유선임제를 적용하는 방안이다. 이번 회계제도 개선이 회계개혁 수준이 되려면 최소한 상장법인지정제가 채택돼야 할 것이다.

지금의 자유선임제에선 갑을관계가 형성돼 감사받는 기업이 보수 지급으로 갑이 되고 감사를 하는 회계법인이 을이 된다. 실무에선 감사계약을 따기 위해 회계법인 간 과당 경쟁이 벌어진다. 또 일부 기업에선 경쟁입찰까지 부친다. 그러나 낮은 보수는 지나치게 적은 감사 투입시간으로 이어져 불량한 감사품질을 초래한다. 현재 감사보수에 대해서는 아무런 표준규정이 없다.

기업 측에선 지정제로 바뀌게 되면 감사가 까다로워지며 보수가 대폭 올라간다고 우려하는데, 이는 정부당국과 관련 협회가 함께 참여하는 조정기구를 만들어 합리적 지정기준을 정하면 된다. 요컨대 감사의 갑을관계를 바꿔 사회가 신뢰하는 감사가 이뤄지도록 획기적으로 회계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김광윤 <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한국감사인연합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