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우리에게 주어지는 인생의 특별한 날들
누구든 이맘때쯤이 되면 한 해를 헤아려 보게 된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란 것은 이상한 날이다. 따지고 보면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어떤 날임에도 불구하고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한다. 새해란 것도 이상하다. 언제든 결심을 할 수 있는 날들이 많고 많은데 한 해의 첫날은 꼭 무언가를 결심하게 만든다.

나 역시 지난 한 해를 돌아본다. 한 해만큼의 시간이 지나가고, 한 살의 나이가 덧붙여지고, 1년만큼의 경력과 작품이 늘어났다. 하지만 그저 지난 1년을 추억하는 것에 그치는 것은 성인의 연말이 아닐 것이다. 한 해씩 앞으로 전진하고는 있는데 과연 그만큼의 진전도 있는 것인지가 이즈음의 개인적 이슈다. 혹시 지난 1년이 그저 차감된 한 해가 돼버린 것은 아닌지, 이 일 년 열두 달이 행여 감가상각으로 처리돼 버릴 것은 아니었는지 꼼꼼히 짚어보게 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전진이 있어야만 진전이 가능하다. 두 단어는 아주 비슷하지만 뜻이 주는 의미는 사뭇 다르다. 앞으로 나아간다고 해서 매번 발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론 한 걸음 더 발을 떼어도 진전의 완성을 겪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고자 애쓴다. 전진이 없으면 진전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연말과 새해에 딱 걸맞은 1인치의 미학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있다. ‘플래툰’ ‘JFK’를 연출한 올리버 스톤 감독의 ‘애니 기븐 선데이(ANY GIVEN SUNDAY)’란 작품이다. 영화의 소재는 미식축구다. 우리에겐 생소한 미식축구의 세계를 다루지만 이 영화의 백미는 미식축구 감독으로 분한 명배우 알 파치노의 대사에 있다. 은퇴 압력을 받는 감독은 팀 존폐의 사활이 걸린 경기를 앞두고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마지막 스피치를 토해낸다.

“3분 후에 우리 인생에 가장 큰 전투가 벌어진다. 우리가 한 팀으로 회생할 것인가, 부서질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접전마다 1인치씩 밀리면 우리는 끝날 것이다. 나이를 먹게 되면 여러 가지를 잃는다. 그게 인생이야. 하지만 잃기 시작하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지. 결국 인생은 1인치의 게임이라는 걸. 풋볼도 그래. 인생이건 풋볼이건 오차 범위는 매우 작아서 반걸음만 늦거나 빨라도 성공할 수 없고, 반 초만 늦거나 빨라도 잡을 수 없다. 모든 일에서 몇 인치가 문제야. 그 1인치는 도처에 널려 있고, 그것들이 모여 승패와 생사를 좌우하지. 우리는 그 1인치를 위해서 싸워야 한다. 어떤 종류의 싸움이건 죽을 각오가 된 자만이 그 1인치를 찾아낸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인생이다. 자, 어떻게 할 건가?”

영화의 제목 ‘애니 기븐 선데이’는 미식축구가 열리는 매주 일요일을 뜻하기도 하지만, 매번 우리에게 주어지는 인생의 특별한 어떤 날들을 뜻하기도 한다. 진전은 생각지도 못한 한 해였을 수도 있다. 어쩌면 알 수 없는 패배감을 느낀 한 해였을지도 모른다.

어떤 요일이든 우리는 때론 이기기도 하지만 패배하기도 한다. 아쉽게도 매번 이기는 게임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땀 냄새가 가득한 이 영화의 라커룸을 떠올려 본다. 한 걸음, 혹은 1인치가 주는 의미에 대해서. 새해에는 그 1인치를 획득하기 위해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기를 고대한다. 모두가 그런 새해를 맞이했으면 한다.

이윤정 < 영화전문마케터·퍼스트룩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