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가짜보수 인물열전 1
낙태와 안락사의 합법화는 1970년대 초반이었다. 소위 ‘68 혁명’의 결과였다. ‘생명 vs 선택’ 논쟁은 지금도 미국 정치를 좌우로 양분한다. 한국에서는 이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 남아선호의 한국은 낙태가 특별히 많았다. 안락사 문제는 보수 색채가 분명하고 동성애도 보혁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보수 기독교인들은 동성결혼에 우호적이라는 한가지 이유만으로도 박원순에 반대표를 던질 충분한 이유를 찾는다.

이는 반기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반기문은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하는 동안 동성결혼의 제도화를 지지해왔다. 그가 이 입장을 거두지 않는다면 기독교 보수세력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 반기문은 환경주의 좌파(원리주의)이기도 하다. 반기문은 환경회의론자에게는 발언권조차 주지 말아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을 펴기도 했다. 유엔 등 국제기구들에는 환경주의 좌파가 유달리 많다. 이들에 반대하는 환경회의론자(skeptics)들은 소위 ‘인간에 의한 온난화(man-made global warming)’, 혹은 환경 종말론을 의심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1급 지구과학자와 기상학자들이 충분히 많다. 동성애와 환경주의만으로도 반기문은 통상 좌익 혹은 진보라고 의심받을 수 있다. 경제정책은 불명확하다. 그러나 IMF를 제외한 대부분 국제기구엔 설계주의적 세계관 즉, 사회주의적 성향의 인물들이 많다. 좌파야말로 ‘인터내셔널’이다.

우리는 김무성의 정치성향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무이념이라기보다는 무개념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이념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것처럼 보인다. 노조에 대한 입장 역시 불명료하다. 그는 결과적으로 박근혜의 철도노조 개혁을 좌절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와 규제완화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동시에 추구했다. 이명박은 동반성장과의 충돌이었다. 타협적이었기에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고 말았다. 국민행복을 국가의 의무 혹은 시민적 청구권으로 받아들이면 분명 좌파다. 남경필 원희룡 유승민 등은 그런 의미에서 보수일 수도 우파일 수도 없다. 새누리당의 실패는 그런 이념의 잡종교배가 오랜 기간 거듭되면서 나타난 열성 유전의 결과다.

경제적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워졌다. 정진석은 좌익성향 연설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본인은 왜 사람들이 놀랐는지 모르는 것 같다. 이념의 무정부성 즉, 가치 문맹들이 새누리에는 많다. 좌익진영이 새누리당을 깔보는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물론 민주당에는 낡은 좌익이념이 흘러넘친다. 최루탄 향기 가득한 거리의 민주화에 가위눌려 있다. 새누리당은 자유경제원이 평가한 시장친화성 지수에서 100점 만점에 48점을 받았다. 민주당은 30점대였다. 더구나 최근의 정치 정세는 한국 사회의 좌경적 선회를 강력하게 보여준다.

유승민은 사드 문제를 제외하고는 좌경적이라는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는 국회 권력을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안 문제로 대통령과 정면충돌했다. 본인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읊조리며 나갔지만 국회법 개정을 통해 헌법적 균형을 깨고 있다는 점에서 위헌적이라는 비판의 소지가 크다. 큰 정부도 그렇지만 큰 국회도 좌경적이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의 제안자라는 것은 더욱 그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역사교과서 문제는 복잡하다. 놀랍게도 적지 않은 자유주의자들이 국정화에 찬성하고 있다. 국정화 반대가 거짓과 부정으로 범벅된 좌익 교과서를 온존시키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유승민은 경제나 정치에서 제한된 권력을 원하는 우파라고 볼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헌법적 가치를 인정해야 진성 보수라 말할 수 있다. 친박은 그 진영을 대표한다는 몇몇 사람의 지력부터가 의심스럽다. 슬픈 일이다. 따뜻한 시장, 개혁적 보수를 주장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나 그럴듯한 수식어를 달게 되면 이미 순수한 이념과는 거리가 멀다. 이념은 간단할수록 좋다. 보수 진보의 잘못된 구획 기준은 나중에 따로 말하겠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