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판 로스차일드'를 기대한다
올해로 창업 205주년을 맞은 영국 로스차일드 그룹의 역사는 브렉시트, 트럼프 리스크, 경기침체, 대통령 탄핵 등 수많은 난제로 위축된 우리 금융권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로스차일드는 난관을 지속 가능한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잉글랜드은행 지급불능 사태, 1·2차 세계대전 그리고 대공황 같은 역경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소규모 직물상으로 출발해서 세계 최대 금융사가 됐다. 그룹의 성공 비결은 세 가지다. 첫째, 과감한 국제화를 단행했다. 로스차일드는 이미 19세기 초반 프랑크푸르트, 파리, 빈, 나폴리 등 서유럽 각지에 사업 기반을 구축했다. 19세기 중반부터는 동유럽과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시장에도 진출했다. 2016년 현재 세계 50여개국에 지사를 운영 중이다. 국가에 따라 상이한 시장 상황과 환율 차이를 이용해 큰 수익을 올렸다. 자회사들 사이에 긴밀한 공조 체제를 가동해 경영난을 극복해왔다.

둘째, 사업 다각화에 매진했다. 프러시아 언론인 프리드리히 폰 겐츠에 따르면 회사는 맹목적인 수익 극대화 전략을 경계하면서도 신규 사업 진출을 지속했다. ‘머천트 뱅킹’ 업무 외에도 리오 틴토와 드 비어스 같은 대형 광산회사 지분을 인수해서 각종 원자재를 거래했다. 영국 왕실 등 VIP 고객들에게 개인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철도와 운하를 비롯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투자했다. 인수합병에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셋째, 정보력을 키웠다.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의 지적과 같이 최신 정보의 중요성을 간파한 영국계 다국적 금융회사는 촘촘한 첩보망과 통신망을 구축했다. 이에 힘입어 세계 정치와 경제 흐름을 손바닥 보듯 했다. 워털루 전투의 향방을 미리 알았을 뿐 아니라 프랑스 7월 혁명과 브라질 독립을 예견했다. 1970년대 영국의 유럽통합과 1980년대 공기업 민영화 사업을 한발 앞서 준비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모면했다.

로스차일드가 걸어온 길은 한국 금융업계가 나아갈 바를 제시한다. 첫째, 세계화를 모색해야 한다. 오랜 기간 금융권은 나라밖 시장을 소홀히 해왔다. 진출 성과 역시 실망스럽다. 금융중심지지원센터에 따르면 2015년 12월 현재 금융업체의 해외지점은 400개에 육박한다. 그러나 해외수익비중은 대부분 10%대를 넘지 못한다. 세계 경제의 부침에 취약한 우리 시장의 리스크를 해소하고 금융산업이 신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내실 있는 글로벌 전략이 절실하다.

둘째, 신규 사업을 발굴해야 한다. 금융권은 수십년간 계속된 과도한 규제와 안이한 사업 관행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익률 감소 추세가 구조화할 조짐마저 보인다. 새 사업 진출을 저해하고 업종 간 합종연횡을 막는 규제 혁파를 촉구할 때다. 이자수입, 담보대출에 의존하는 단조로운 비즈니스 포트폴리오와 작별해야 한다. 해외기업 인수합병, 지식재산권 거래와 현물투자 같은 미답의 영역에 대한 도전이 필요하다.

셋째, 정보 수집과 분석 역량을 길러야 한다. 업계는 업무 효율화를 위한 정보통신기술(ICT) 도입에는 발 빠르다. 위기 극복에 긴요한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I) 확보와 해석 역량에 대한 투자는 인색하다. 이로 인해 기획부서가 생산하는 정보는 언론 보도 짜깁기 수준에 머문다. 주요 투자 결정은 해외 업체의 조사력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골드만삭스, 노무라, UBS 등 선진 금융회사들의 정보력 배양 노력을 주목해야 한다.

나라 안팎의 정치·경제적 불투명성에 짓눌린 우리 금융회사들이 위기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란다. 가족 경영을 고집하면서도 초우량 최장수 금융기업 반열에 오른 로스차일드에 버금가는 ‘한국판 로스차일드’가 태동하기를 기대해본다.

윤계섭 < 서울대 명예교수·경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