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선동 정치가들의 이념적 자양분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지난달 9일은 1989년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이기도 하다. 한 세대의 시차를 두고 겹친 두 사건은 흥미로운 역사적 연결고리가 있다. 베를린 장벽에 이어 1991년 ‘철의 장막’ 소련의 붕괴로 가속화한 세계화가 무역·이민 장벽을 내세운 트럼프 당선으로 되레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당선 수락연설에는 주목할 만한 발언이 하나 있었다. “잊혀진 사람들(forgotten men)을 더 이상 소외시키지 않겠다”는 말이다. 몰락한 러스트 벨트(미국 자동차산업 중심지역)의 저소득·저학력 백인 유권자들을 가리킨 것이다.

잊혀진 사람은 1880년대 사회학자인 윌리엄 그레이엄 섬너 미국 예일대 교수가 처음 사용한 용어다.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복지비용을 부담하면서도 국가의 배려나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사람을 뜻한다. 이들은 국가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긴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애미티 슐레스는 “거시경제적 집단들 틈에 끼여 잊혀진 미시경제적 주체”라고 지적했다.

이들의 불만을 꿰뚫어 본 것이 트럼프다. 선거기간 내내 “글로벌리즘이 아니라 미국 우선주의가 우리의 신조”라고 부르짖었다. 값싼 중국산 제품에 45% 관세를 매기고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아 외국인 노동자에게 빼앗긴 일자리를 되찾겠다는 공약에 잊혀진 사람들은 열광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도 세계화와 국경 개방으로 이민자에게 밀려난 영국판 잊혀진 사람들의 반란이었다.

세계화는 미국식 시장경제 체제의 확산 전략인 ‘워싱턴 컨센서스’에 뿌리를 둔 자유무역 기반의 국제질서다. 그 덕에 신흥국과 일부 거대기업, 고학력 전문직 등은 혜택을 입었지만 선진국의 상당수 노동자는 실업자로 전락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보상이 소수의 특권층으로 돌아갔다”고 지적했다. 2008년에 터진 금융위기는 이런 모순을 더욱 증폭시켰다.

잊혀진 사람들의 분노는 기득권 정치인들로 향하고 있다. 세계화의 한계를 극복할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트럼프에 표를 몰아준 러스트 벨트는 원래 민주당의 오랜 텃밭이었다.

기존 질서에 안주해온 유럽의 중도좌우 주류 정당들도 몰락 일보 직전이다. 이 정치적 공백을 프랑스 국민전선(FN), 독일의 AfD 등 극우 포퓰리즘 정당들이 빠른 속도로 채우고 있다. FN 대표 마린 르펜은 내년 프랑스 대선 승리를 넘볼 정도다. 반(反)이민·유럽연합 성향의 자국 우선주의, 내셔널리즘이 데마고그(선동 정치가)들의 이념적 자양분이다.

포퓰리즘은 해법이 될 수 있을까. 2008년 위기의 원조 격인 1929년 대공황에서 교훈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미국에서도 외국인 혐오주의자 찰스 코플린, 급진주의자 휴이 롱 등이 대중을 선동했다. 미국은 그러나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그해 독일은 아돌프 히틀러가 총리에 올랐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에 앞서 ‘독일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외친 것이 히틀러다. 대중의 엇갈린 선택은 양국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세계는 또 한 번 중대한 역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이정선 국제부 차장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