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지속가능한 성장의 조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지난 9일 국회에서 통과됐다. 지난 몇 달간의 정치적 혼란을 매듭지을 수 있는 첫 단추가 끼워진 것이다. 이제부터는 좀 더 차분한 마음으로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결정 과정을 지켜보면서 경제, 안보의 총체적 난국을 돌파하는 데 중지를 모아야 할 것 같다. 특히 경제위기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악화된 우리를 둘러싼 작금의 경제여건에 국민적 관심과 여야 할 것 없는 범국가적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해운업과 조선업은 여기저기 아픈 상처를 내면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철강, 화학, 건설 등의 업종은 시급히 정부 주도로 구조조정을 시작해야 할 상황이다. 그동안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우리 경제가 버티는 데 도움을 준 저금리 시대도 미국 중앙은행(Fed)의 12월 금리 인상을 시발로 막을 내릴 전망이다. 더욱이 우리 경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중국 경제도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사드 배치 문제와 관련된 중국의 통상압력도 정부 차원에서 풀어야 할 이슈로 등장했다.

이런 심각한 대내외 경제상황은 지난 분기 우리 경제의 성장률을 0%대로 끌어내렸다. 더 두려운 것은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유수의 글로벌 투자은행들, 그리고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은 내년도 한국 경제성장률을 2%대로 예상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 이후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우리 경제에 더욱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하다. 또 내년 초 출범하는 미국 트럼프 정부가 추구할 보호무역정책은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직격탄을 날릴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중국 경제가 경착륙을 하고 중국이 한국에 직간접적으로 통상압력을 가한다면 생각하기도 끔찍한 악몽 수준의 일이 우리 경제에 벌어질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탄핵정국’에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시급한 산업의 구조조정은 물론 사면초가에 빠진 우리 경제를 구해낼 제대로 된 처방과 정책 마련을 위한 논의는 뒷전인 채다. 오로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판결을 앞당기고 그 이후에 치러질 대선의 유불리를 계산하는 데에만 제각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리당략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하는 마음으로 상호 협력해서 깊은 수렁에 빠져 침몰하고 있는 경제부터 챙겨야 한다. 정치가 경제를 다잡는다는 모습을 보여야 한국 경제에 대한 대외신인도 하락도 막을 수 있다. 그나마 경제부총리 문제를 매듭지은 건 다행이다.

노무현 정부의 5%대 성장, 이명박 정부의 4%대 성장,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3%대 성장에서 보는 것처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 경제성장률이 떨어져 왔다. 차기 정부에서는 2%대 이상의 성장이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물론 저성장의 기저에는 세계경제 침체, 인구 감소 등의 구조적 요인이 있다. 하지만 한국 경제 자체가 역동성을 잃어가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이유다. 소비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위축된 지 오래다. 기업 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경제부총리는 소비자와 기업가들의 불안심리를 안정시키고 소비와 투자를 진작시킬 수 있는 신선한 정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또 향후 나타날 미국, 중국 등의 통상압력에 적극 대처하는 방안을 만드는 데도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성장이 우선이냐 분배가 우선이냐’는 논쟁이 경제와 관련된 가장 큰 담론이었다. 이 논쟁은 일정 수준의 지속적 경제성장 자체는 큰 문제 없이 달성할 수 있다는 가정에 근거한 것이었다. 지금은 이 가정 자체가 틀린 것이 됐다. 현재는 우리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가장 큰 경제적 이슈로 등장했다. 새로운 경제리더십이 위기 국면의 경제를 구해내고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의 마중물을 마련할 수 있길 경제를 걱정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조명현 < 고려대 교수·경영학 / 객원논설위원 cho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