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칼럼] 도덕과 법 사이의 거리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로 이어진 이번 위기는 ‘최순실 추문’이라는 도덕적 문제로 시작됐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측근에게 직무 수행에서 비정상적으로 의존했음이 드러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도덕적 권위를 잃었다. 이어 측근들의 부패에 대통령 자신이 연루됐다는 증거들이 나와서, 법적 문제들이 더해졌다.

도덕과 법 사이의 관계는 유기적이지만, 둘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둘을 뒤섞으면, 합리적 진단과 처방이 어려워진다. 당연히, 도덕적 차원과 법적 차원을 변별하는 노력은 긴요하다.

법은 연역적 체계다. 하위법은 상위법으로부터 도출되고 권위를 얻는다. 그런 소급 과정은 헌법에서 끝나지만, 헌법이 스스로 권위를 갖춘 것은 아니다. 헌법은 외부 규범인 도덕에서 권위를 얻는다. 모든 권위는 궁극적으로 도덕적 권위라는 얘기가 거기서 나온다.

이런 사정은 연역적 체계의 전형인 수학에서 잘 드러난다. 어떤 정리든 상위 정리에서 도출된다. 그런 소급 과정은 궁극적으로 우리 직관에 맞는 기본적 용어들과 공리들에 이른다. 즉 기본적 용어들과 공리들에서 연역적 추론을 통해 정리들이 차례로 도출돼 거대한 수학 체계를 이룬다.

이처럼 연역적 체계들은 궁극적 권위를 외부에서 얻는다. 법체계는 도덕에서 권위를 얻고 수학 체계는 수학적 직관에서 권위를 얻는다. 이번 사태가 점점 혼란스러워지면서, “모든 것을 헌법에 따라 처리하자”는 얘기가 자주 나왔다. 옳은 얘기지만, 실제로는 도덕적 차원의 문제들은 법에 따라 처리하기가 어렵다. 도덕은 법에 권위를 부여하지만, 자신은 법이 아니다. 도덕은 삶의 모든 면에서 늘 작용하지만, 법은 두드러지게 부도덕한 행위들만을 뽑아서 다룬다. 자연히, 도덕적 문제들은 대부분 법으로 다루기 어렵다. 법으로 다룰 만한 사항들은 이미 법체계 속에 들어갔을 터이다.

도덕적 권위를 잃은 대통령이 제기하는 문제는 그래서 깔끔하게 풀기 어렵다. 도덕적 권위의 상실에 대한 도덕적 대응은 대통령의 자발적 사임이다. 도덕적 문제에 대한 도덕적 차원의 대응이어서, 깔끔하고 부작용들도 적다. 아쉽게도 이번 사태는 빨리 진행돼, 박 대통령은 그 길을 고를 기회를 잡지 못했다.

대통령이 자발적 사임을 거부하면, 사회는 사임을 강제할 수 없다. 사회적 강제는 법체계에 해당 규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우리 법체계엔 대통령의 도덕적 권위의 상실에 대한 규정이 없다. 도덕적 권위의 상실이 일시적인지 영구적인지, 경미한지 물러나야 할 만큼 중대한지 따질 장치조차 없다. ‘국민의 뜻’을 따르라는 목소리는 크지만, 국민의 뜻을 헤아리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고 국민의 뜻이 옳은가 판정할 수단도 없다. 시위 군중이 많다는 사실도 절대적 기준이 되지 못한다. ‘촛불 시위’가 열린 바로 그 자리에서 몇 해 전엔 ‘광우병 시위’가 열렸다.

반면에, 대통령의 위법 행위들은 법으로 다뤄야 한다. 탄핵은 상세한 규정을 따르고 결과도 명확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사태를 되도록 법적 차원에서 다루려 애써야 한다.

박 대통령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과 분노는 주로 도덕적 차원에서 나왔다. 그러나 탄핵소추에 따른 절차는 구체적 위법 행위들을 다룬다. 도덕은 전반적이고 근본적이지만, 법은 구체적이고 표면적이다. 자연히, 시민들은 법적 절차가 불충분하다고 느끼게 돼, 초법적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도덕적 차원과 법적 차원을 변별해서 시민들의 실망과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법적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도록 하는 것은 정치 지도자들의 기능이다. 이 점에서 야당 지도자들의 행태는 실망스럽다.

탄핵소추에 도덕적 문제를 넣은 것은 전형적이다. ‘세월호 7시간’은 엄청난 추문으로 커졌지만, 그동안 나온 풍문들을 다 모아도 박 대통령의 불법 행위를 구성하지 못한다. 세월호의 비극과 관련된 박 대통령의 책임은 무겁지만, 그것은 도덕적 책임이다. 탄핵의 범위를 한껏 넓혀도, 탄핵소추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야당 지도자들이 자기 이익만을 따지면서 박 대통령이 내놓은 수습 방안들을 거듭 거부하는 사이에, 정치 논리는 시위 논리에 압도됐다. 이제라도 야당 지도자들은 도덕적 차원과 법적 차원을 잘 변별해서 시민들의 판단을 인도해야 한다.

복거일 < 사회평론가·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