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엊그제 끝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한 데는 기존 정치인들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지나치게 강조해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이란 인종, 민족, 종교, 성 등에서 차별이 포함된 용어나 표현을 쓰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꼭 도덕적 당위는 아니지만 정치적으로 볼 때 이런 용어를 쓰는 것이 맞다(correct)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미국에서는 약자인 PC로 자주 쓰인다.

미국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수십년 동안 강조되면서 다문화에 대한 존중이라는 사회적 자본이 쌓이긴 했지만 일반 국민, 특히 백인들 사이에서는 이것이야말로 ‘정치적 위선’이라는 비난이 적지 않았다. 시사만화 찰리 브라운에도 이런 현실이 반영돼 있다. 흑인 친구가 “나는 흑인이야”라고 말하자 찰리는 “그렇군”이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찰리가 “나는 백인이야”라고 말하자 흑인 친구는 당장 이렇게 나왔다. “너는 인종주의자야!”

실제 사례를 보면 그 정도가 심각하다. 상당수 도시가 쇼핑몰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쓰거나 표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인정하지 않는 무슬림에게 불쾌감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또 일부 중·고등학교에서는 미국 국기를 달지 못하도록 했는데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위압감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배려’였다.

이뿐만 아니다. 무슬림 택배기사가 배달선물에서 맥주가 나오자 배달을 거부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오바마 정부는 이 기사를 해고한 회사를 종교탄압죄로 처벌했고 이 무슬림 기사는 3억원 가까운 보상금을 받았다.

이렇게 정치적 위선이 만연한 상황에서 트럼프가 나타난 것이다. 지난해 6월 트럼프 대선출마 선언식에서 그의 딸 이방카는 “아빠는 ‘정치적 올바름’과는 정반대”라며 “자기가 생각하는 걸 말하고, 말하는 걸 생각한다”고 소개했다. 트럼프는 유세 기간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백화점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를 볼 수 있게 해주겠다” “불법이민자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장벽을 쌓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당수 사람이 트럼프가 노골적이고 차별적인 막말을 한다고 비난했지만 더 많은 유권자는 정치적 위선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다른 정치인과는 달리 각종 이익단체의 정치헌금을 받을 필요가 없는 트럼프만이 할 수 있었던 행보라는 분석도 있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